아키런 서울(ARCHI RUN SEOUL) : 건축가와 달리는 도시 탐험

건축가와 함께 도심을 달리며 건축물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러닝 모임이 있다. 건축가와 6km를 같이 뛰었다. 하필 산길이었다.
BY 에디터 이미헤 | 2025.11.03
“오늘 코스는 도시 탐험에 가까워 좁은 골목이나 계단이 많습니다. 달릴 때 무릎 조심하시고요. 설명과 투어를 포함해 2시간 30분 정도 예상합니다. 코스는 이곳 동숭동에서 시작됩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러너들이 모였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해 열리는 ‘아키런:건축가와 함께 서울을 달려보다(이하 아키런)’의 참가자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달리기보다 탁월한 게 있을까? 도시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생명체다. 숱한 건물과 상점의 외벽, 간판들이 도시의 피부를 구성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 토머스 헤더윅은 경복궁 인근의 녹지광장에 전 세계 400여 건축물의 이미지를 모아 90m 길이의 ‘휴머나이즈 월’을 제작하기도 했다. 물론 대형 조형물보다 더 끌리는 건 달리기를 사랑하는 건축가들과 함께 직접 도시를 탐험하는 일.
혜화 러닝 관련이미지
양수인, 구중정, 신민재, 승지후와 강민선, 총 4팀의 건축가들은 직접 5~7km의 코스를 설계하고 시민과 함께 뛰며 도시에 숨겨진 건축적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 모두 러닝 마니아로, 구중정은 한동안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건축학개런’이라는 러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건축가의 해설을 듣고, 풍경을 보고, 공간을 흐름을 몸으로 느끼며 건축과 도시를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러닝 복장과 운동화는 필수다. 10월 8일부터 11월 8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아키런’의 첫번째 러닝 메이트는 건축가 승지후와 강민선. ‘이로재’의 대표 승효상 선생의 아들 내외다. 이들의 코스는 이로재가 위치한 대학로에서 동대문 을 지나 장충동까지 이어진다. 승지후는 4년째 이 루트로 퇴근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 앞, 출발에 앞서 동숭동의 상징이 된 붉은 벽돌 건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현 아르코미술관 자리의 땅은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진즉에 매입해 두었던 것으로, 동숭동의 주거지역이 개발되며 미술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이 설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측에 필지 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로에 첫 김수근 건축이 들어선 게 1977년이다. 그리고 연이어 샘터 건물(1979), 아르코예술극장(1981)이 김수근의 설계로 생겨났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대학로의 지구단위계획에는 벽돌 사용이 권장된다고 한다. 승효상 역시 김수근의 ‘공간연구소’ 설계실에서 일한 바 있다. 러닝 코스는 자연스럽게 두 거장의 건축을 지표 삼아 점점이 연결된다. 옛 민들레영토 공사 현장을 포함해 대학로의 첫 노출 콘크리트 문화시설인 대학로문화공간(1996), 다세대주택 지제헌(2019), 코르텐 건축물 쇳대박물관(2003), 달빛이 흐르는 집 월류헌(2011), 우현재(2019) 등 이로재의 건축 프로젝트를 둘러보고,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과 낙산성곽길을 지나 동대문, 숭인동, 자하 하디드의 DDP와 김수근의 경동교회(1981), 장충동의 ‘웰컴사옥(2000)’에서 끝이 난다. 실제로 전 코스를 뛰었다. 두 건축가를 선두로 줄지어 달리다 마이크를 찬 강민선이 특정 건물 앞에 멈춰 서면 모두 모여서 3~4분쯤 설명을 듣고 각자 건물 내외부를 둘러보는 ‘뛰다가 쉬다’의 진행이 반복됐다. 일종의 인터벌 러닝인 셈. 건축사무소 이로재에서는 11월 비엔나 전시를 준비 중인 승효상 선생을 만나고, 지하의 검도실도 구경했다. 승지원 작가의 작업실에 들러 시원한 보리차도 한 잔 얻어 마셨다. 오늘의 러닝 크루를 위해 작가가 미리 준비한 것. 해방 이후 이승만의 개인 사저였던 이화장 일대는 원래 배밭이었으며, 조선 시대부터 문인들이 주로 살았다는 설을 비롯,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된 벽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최근 색다른 ‘핫플’로 뜨고 있는 산꼭대기 카페와 적산가옥의 다채로운 활용 방식 등 이야깃거리는 차고도 넘쳤다. 턱끝까지 숨도 차올랐다. 하필이면 산길이라니!
혜화 러닝 소식
다양한 건축과 그 뒷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달리며 만나는 서울의 풍경이다. 벽마다 옷을 걸어놓고 파는 동묘의 구제시장, 알록달록 파라솔이 펼쳐진 골목 야장, 청계천과 동대문의 오래된 건물과 각양각색의 간판, 그리고 사람들…. 이미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이지만 헉헉 숨을 내뱉고 땀을 흘리면서, 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는 서울은 더없이 새롭고 반갑다. 참여 건축가 중 한 명인 ‘삶것’의 양수인은 이를 “도시를 발로 관찰하는 일”이라 표현한다. “달리다 보면 내가 스쳐 지나치고 있는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오르막은 무조건 힘들고 내리막은 아무리 미세해도 쉽거든요. 저절로 보고 느끼게 되죠.” 양수인은 그가 설계한 상수동의 복합문화공간 ‘틸라(THILA)’에서부터 시작해 한강 변의 다리들을 지나는 러닝 코스를 계획하고 있다. 건축사무소의 위치를 틸라로 옮긴 그가 요즘 매일 뛰는 9.7km의 코스다. “모든 도시의 형성은 물이랑 관련돼 있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건축의 지형도 달라집니다. 양평 쪽이 높고 그 반대는 낮죠. 강남 방향은 다 내리막이에요. 물론 어느 정도 오르내림은 있습니다.”달리는 건축가들의 원년 멤버 구중정은 사대문 안의 근대 건축을 다룰 예정이다. 신민재는 서대문부터 명동을 돌며 종교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무계획적 택지 개발과 도로 확장 등으로 못난이가 돼버린 자투리땅과 그 땅에 살아남은 ‘얇은 집’들을 다룬 <땅은 잘못 없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건축가와 함께하는 특별한 러닝이 아니더라도 달리기를 하며 한번쯤 우리가사는 도시의 입면체 이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건물은 다채롭고 서울은 생각보다 꽤 푸르다. 장충동에서 달리기를 끝내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다. 온몸이 쑤신다. 물론 달리기는 죄가 없다. 내가 문제일 뿐. 아키런 프로그램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인스타그램(@seoulbiennal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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