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구독 서비스 왜 뜨나? 패션 렌털 시장 성장 이유

떠나는 옷을 미련 없이 보낸다. ‘렌털’이라는 급진적 쇼핑 태도를 수용한 세대의 옷장에 기간제 옷이 채워지고 있다.
BY 에디터 최윤정 | 2025.12.16
지난 10년간 패션계의 급진적 변화는 런웨이가 아닌 ‘옷장’에서 일어났다. 요즘 20~30대에게 패션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소셜미디어 피드를 채울 반질반질한 새로움이자 단 하루의 특별한 경험,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즐거운 놀이다. 이 거대한 지각 변동 속에서 수백억 달러 규모의 패션 구독 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혁신의 시작은 스티치 픽스, 트렁크 클럽이 주도한 ‘큐레이션-구매(Curation-to-Buy)’ 모델. AI와 스타일리스트가 당신이 소유할 옷을 골라주는 든든한 쇼핑 파트너 형태의 플랫폼이다. 진짜 혁명은 그다음이다. 뒤를 이어 ‘렌털-접근(Rental-Access)’ 모델이 등장했다. “소유하지 마라. 그저 경험하라”고 속삭이는 급진적 비전이다. 전자가 더 나은 구매를 위한 조력자에 머물렀다면 이 새로운 문화는 전통적인 쇼핑 방식에 안녕을 고하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 들고 있다.
싱글즈 12월 호 의류 구독 서비스 관련 이미지
꿈의 옷장과 현실의 계산서
물론 혁신의 과정은 늘 쉽지 않다. 개척자들에겐 특히 가혹하다. ‘렌털-접근’ 모델을 패션계의 주류 담론으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이름은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 이하 RTR). ‘클라우드 속 무한한 옷장’이라는 이들의 비전은 가히 혁명적이다. 수백만 원짜리 디자이너 드레스를 단 몇만 원에 빌려 입을 수 있다니! 특별한 날을 위한 경험을 소비한다는 개념은 많은 이를 열광시켰다. 이들은 하이 패션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추며 수많은 여성에게 신데렐라의 경험을 선사한다. RTR은 특정 계층의 니즈에 주목했다. 결혼식 참석,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이나 화려한 파티를 준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전문직 여성들이 그들의 타깃이다. 이들은 800개가 넘는 디자이너 브랜드 파트너십을 통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옷에 대한 접근성이라는 강력한 가치를 판매한다. 그러나 꿈의 옷장을 계속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RTR의 비즈니스 모델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군비 경쟁에 가깝다. 안목 높은 고객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RTR은 매 시즌 가장 트렌디하고 신선한 재고를 끊임없이 확보해야만 한다. 이들은 2025 회계연도 시작 당시 렌털 제품 확보에 역대 최대 규모인 7000만~7500만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막대한 고정 비용은 결국 고객에게 전가된다. 2025년 7월 RTR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이유로 10개 아이템 플랜의 월 구독료를 144달러에서 164달러로 인상하는 등 또 다시 가격을 올렸다. 높은 재고 비용에 따른 구독료 인상, 가격에 민감한 고객 이탈, 이탈 방지를 위한 더 많은 투자라는 위험한 성장의 쳇바퀴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다. RTR은 여전히 렌털 시장의 선두 주자지만 지속적인 순손실 속에서 ‘수익성’이 라는 근본적인 숙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RTR이 막대한 자본력으로 버티는 동안 이 치명적인 ‘수지 타산’의 벽을 넘지 못한 1세대 주자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르 토트(Le Tote)는 업계의 대표적인 반면교사(反面敎師) 사례다. 2019년 이 유망한 기술 기반 렌털 스타트업은 몰락하던 백화점 체인 로드 & 테일러를 인수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이는 ‘젊은 테크 기업과 비대한 리테일 체인의 잘못된 결혼’이라 불린다. 르 토트는 자신이 감당할 수없는 거대 오프라인 매장의 고정 비용을 떠안았다. 결국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고 파산한 르 토트는 2024년 4월 웹사이트가 사라지며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또한 하이엔드 명품 렌털을 시도했던 아르마리움(Armarium)의 실패는 명품 렌털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다. 렌털 모델은 본질적으로 내구성이 강한 고품질 의류가 필요하지만 5000달러짜리 드레스의 세탁, 수선, 유지· 보수 비용은 렌털의 박한 마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렌털 모델만의 문제는 아니다. ‘큐레이션-구매’ 모델의 선구자였던 트렁크 클럽(Trunk Club) 역시 2014년 노드스트롬에 3억5000만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됐다가 2022년 완전히 폐쇄됐다. 이유는 같았다. 스타일리스트 인건비와 값비싼 양방향 물류비로 인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던 것. 고객이 집에서 편안하게 옷을 입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만 구매한 뒤 나머지를 무료로 반품하는 구조였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배송비와 재포장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지 타산의 벽을 넘어선 유일한 승자, 눌리
모두가 비용과 수익성의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은밀히 왕좌를 차지한 건 2019년 가장 늦게 시장에 뛰어든 눌리(Nuuly)다. 눌리는 현재 RTR의 2배가 넘는 활성 구독자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업계 1위이며, 2025 회계연도에 1300만 달러의 영업 이익을 달성하며 렌털 시장 최초로 ‘수익성’을 증명해냈다. 이 수치는 렌털 비즈니스가 고질적인 밑 빠진 독이 아니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임을 시장에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경쟁사들이 여전히 막대한 마케팅비와 재고 부담으로 적자 생존을 이어가는 것과는 대조된다. 눌리의 성공은 더 나은 앱이나 더 트렌디한 감각 때문이 아니다. ‘스타트업’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지극히 냉철한 ‘전략’의 승리다. 눌리는 어번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앤트로폴로지 (Anthropologie), 프리 피플(Free People)을 소유한 거대 리테일 기업 어번 아웃 피터스(이하 URBN)의 자회사다. 눌리의 성공 방정식은 경쟁자들을 무너뜨린 핵 심 비용 문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데 있다. RTR이 도매가로 새 옷을 사들여 곧 재고를 만드는 데 매년 7000만 달러 이상을 쏟아붓는 동안 눌리는 자사 제품의 45%를 자매 브랜드로부터 원가로 조달한다. 이는 단순히 구매 비용을 10~20% 아끼는 차원을 넘어선다. 팔지 않고 남은 재고, 일명 악성 재고가 발생할 위험 자체를 모기업이 유연하게 분산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며, 렌털 비즈니스 수익 구조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경쟁자들이 비효율적인 물류로 고전할 때, 모기업 URBN은 눌리만을 위한 약 5만6200m²(1만 7000평) 규모의 고도로 자동화된 물류 센터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곳에서 하루 수만 벌의 의류가 자동화 공정을 통해 검수, 전문 세탁, 수선, 그리고 재포장돼 다음 고객에게 발송된다. 1세대 기업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비효율적인 개별처리 비용을 규모의 경제로 압도한 것이다. 이는 수십 년간 쌓아온 URBN의 리테일 물류 노하우가 집약된 심장부로, 눌리가 폭발적인 성장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눌리는 RTR과 명확히 다른 길을 걸었다. RTR이 특별한 날을 위한 디자이너 브랜드에 치중했다면 눌리는 ‘트렌디한’ ‘캐주얼한’ ‘일상적인’ 옵션에 집중했다. 눌리가 겨냥한 것은 갈라(Gala)에 가는 고객이 아니라 틱톡(TikTok)에 #NuulyHaul을 단 영상을 올리는 Z세대다. 월 98달러에 6개 아이템이라는 단순하고 가치 있는 단일 플랜은 소셜미디어 트렌드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의 니즈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또 앤트로폴로지와 프리 피플의 톡톡 튀는 재고는 새로운 세대의 ‘일상복’으로 정확히 포지셔닝했다. 2024년 4월의 법정. 이 모든 전략적 우위가 공식적인 승리를 거둔 상징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1세대 르 토트는 “URBN이 인수 협상을 가장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과 지적 재산을 훔쳐 눌리를 만들었다”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 르 토트의 주장은 자신들의 모델 없이는 URBN이 이 시장에 진입조차 못 했을 것이라는 절박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연방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URBN(눌리)의 손을 들어줬다. 1세대 렌털의 시대가 저물고, 거대 자본과 냉철한 전략으로 무장한 2세대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선고였다. 패션 구독 시장은 ‘경험’이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이는 매 시즌 언급되고 있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한다. 지속 가능성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 패션 산업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 소비자들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좇지만 그와 동시에 패스트 패션이 야기하는 환경 파괴에 죄책감을 느낀다. 렌털-접근 모델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제시한다. 즉 패스트 패션의 새로움과 다양성을 환경 파괴의 죄책감 없이 순환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마음껏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눌리가 “우리 구독자의 3분의 2가 평균보다 패스트 패션 소비를 훨씬 덜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눌리는 모기업의 이점을 활용해 수익성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경험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2가지 거대한 트렌드에 가장 정확하게 올라탔다. 눌리의 성공은 ‘클라우드 속 옷장’이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닌 패션업계의 미래를 이끌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임을 증명하고 있다. 옷이 아닌 ‘경험’을 입는 시대. 당신이 입고 싶은 경험은 무엇인가?

사진

이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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