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건 왜 돈이 될까? #CUTE-ECONOMY

라부부 열풍에서부터 스퀴시멜로우, 잔망루피까지. 이른바 ‘큐트 이코노미’라는 귀여운 것들에 대한 약간은 귀엽지 않은 이야기.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1.16
라부부 아트웍
© labubu, mixed media collage, n paper, Jamin(2025)
“귀여워!” “큐트!” “가와이!” 외국어를 몰라도 이런 말은 귀에 쏙쏙 박힌다. 자기도 모르게 뺨 언저리로 솟구치는 두 손, 구부러지는 무릎, 한껏 흥분한 성대를 비집고 터져나오는 가느다란 고음. 이 반응은 기침과 딸꾹질처럼 감출 수가 없다. 아름다움, 섹시함 등과 달리 귀여움은 ‘무해함’이 전제된 미학이다. 귀여움은 인간 심리의 방어벽을 해제하는 만능열쇠다. 사람을 홀리는 건 돈이 된다. 귀여움은 최근 몇 년간 경제계가 깊이 탐구하고 있는 무형의 통화다. 이른바 ‘귀여움 경제(Cute Economy)’다. 2026년 트렌드를 예측하는 서적들도 이 키워드를 자주 언급했다. 귀여움이 주식 애널리스트, 경제기자, 트렌드 분석가 등 그다지 귀엽지 않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시작한 것은 팝마트의 영향이 컸다. 팝마트는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왕닝이 설립한 아트 토이 회사다. 그들이 독점 유통하는 IP 중에 2015년 홍콩 작가 카싱 룽이 창조한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시리즈가 있다. <더 몬스터즈>의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라부부였다. 라부부의 성공은 현대 자본주의가 귀여움을 관심으로, 관심을 돈으로 치환해내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2024년 4월, 블랙핑크 리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심술궂게 생긴 인형 키링을 올렸다. 팝마트 측은 그것이 광고가 아니었고, 자기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마침 패션계에서는 ‘백꾸’ 열풍이 불고 있었다. 진지한 명품 백에 나만의 개성과 키치함을 더하면서 장래 환금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키링만 한 게 없었다. 리사와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팬들에게도 루이 비통 레이스 쇼츠보다야 이쪽이 경제적으로나 스타일 난이도 면에서나 나은 선택이다. 라부부는 즉각 스타덤에 올랐다. 태국 공주도 에르메스 백에 손수 스타일링한 라부부 키링을 걸었다. 곧 리한나, 킴 카다시안, 두아 리파도 라부부 팬덤에 합세했다. 거듭되는 품절 대란, 랜덤 박스,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덕분에 라부부를 구매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슬롯머신하듯 도파민 터지는 놀이가 됐다. SNS 인플루언서들은 앞다퉈 ‘제가 드디어 라부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식의 영상을 찍어 올렸다. 팬데믹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리셀 시장은 구입 당첨제와 맞물려 라부부를 재테크 아이템으로까지 변모시켰다. 2024년 3만 점 한정으로 출시한 라부부 × 반스 제품은 한때 리셀가가 280만원 상당으로 치솟았다. 2025년에는 사카이 × 칼하트 의상을 입은 라부부 한정판 14종이 경매에서 4억7418만원에 낙찰됐다. 같은 시기 전 세계 단 한 점뿐이라는 초기 모델이 2억원에 팔리면서 라부부에는 ‘2억 인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쏟아지는 뉴스에 힘입어 라부부 유통사 팝마트의 시총은 2025년 7월 64조원을 돌파했다. 연초 대비 590% 급등한 수치였고, 전 세계 완구업체 중 시총 1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현대차 시총이 54조원이었으니 팝마트가 경제계의 분석 대상이 된 건 당연했다. 2025년 연말 팝마트의 주가는 역사적 고점에서 30%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팝마트의 미래를 섣불리 예견할 수는 없다. 팝마트는 2024년 루브르 박물관 입점을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진출하며 오프라인 시장을 강화하고 있다. 10월에는 상하이에서 라부부 탄생 1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렸고, 11월에는 소니픽처스가 라부부 영화 판권을 구입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팝마트 매출이 라부부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에는 2025년 아이브의 장원영과 레이가 스컬판다 키링을 인증했다는 게 답이 될 수도 있겠다. 팝마트 인형들이 악동미로 팝스타와 힙스터들을 사로잡았다면, 미국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로하는 친절한 봉제 인형 스퀴시멜로우가 있다. 이름 그대로 찌그러뜨리며 놀수 있는 마시멜로 촉감의 인형이다. 스퀴시멜로우는 2017년 출시돼 초기에는 ‘미국 다이소’라 불리는 파이브 빌로와 대형 마트 위주로 판매됐다. 그러다 팬데믹 기간 틱톡에서 ‘불안감을 줄여주는 애착 인형’으로 바이럴이 되면서 벼락 스타로 떠올랐다. 스퀴시멜로우의 마케팅 공식도 팝마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델마다 이름, 취미, 성격, 서사가 있고 시즌 한정판, 지역 한정판 등이 다양해서 원하는 캐릭터를 찾아다니는 ‘스퀴시 헌팅’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킴 카다시안의 딸 노스 웨스트는 유명한 스퀴시멜로우 수집가다. 레이디 가가는 스퀴시멜로우를 ‘진짜 친구’라고 부른다. H&M은 2023년 스퀴시멜로우와 협업 했고, 2024년에는 토니모리가 미국 마케팅을 위해 스퀴시멜로우와 손을 잡았다. 스퀴시 멜로우의 흥행으로 제작사인 재즈웨어스(Jazwares)는 2023년 연 매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쯤 되면 귀여움 경제는 더 이상 귀여운 수준이 아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캐릭터, 굿즈 시장의 규모는 약 166조원으로 추산된다. 뽀로로, 타요 등 유아동 IP를 다수 보유한 아이코닉스는 2025년 최초로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뽀로로의 조연 캐릭터인 잔망루피가 중국 SNS 밈이 되면서 굿즈, 컬래버레이션 등에서 대박이 터졌다. 귀여움 경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여러 가지다. 지난 8월 <뉴욕 포스트>는 라부부 열풍을 분석하면서 새크라멘토 주립대 경제학과장인 데이비드 랭의 견해를 인용했다. 경제 상황이 불안정할 때 소비자들이 큰돈 쓰기를 주저하면서 작은 사치품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일명 ‘립스틱 인덱스’ 현상이 발생하는데, 라부부 열풍이 그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렇다면 이것은 불황의 전조다. 하지만 소품의 유행을 번번이 립스틱 인덱스에 갖다 맞추는 건 게으른 분석이다. 1980년대 양배추 인형, 1990년대 버니 베이비, 25년째 수집가들을 열광시키는 베어브릭을 설명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소비 구조의 변화에 주목한다. 미국 장난감 회사 펀코(Funko)의 고객 평균 연령은 40세다. 스퀴시멜로우의 주요 구매층도 18세 이상 성인이다.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예전이라면 자녀에게 쏟을 시간과 돈을 자신에게 쓰는 성인이 늘었고, 20대를 청소년과 성인의 중간 단계인 ‘영 어덜트’라 칭할 정도로 삶의 주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이 먹고도 무용하고 재미있는 것에 열광하는 ‘키덜트’는 더 이상 별난 존재가 아니다. 귀여움 소비는 유아 퇴행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가 됐다. 구매력 있는 성인들의 참여뿐 아니라 최근 운동화, 위스키, 식물 등 소비재 전반에서 나타난 수집, 리셀, 재테크 문화도 라부부의 성공에 기여했다. 수집은 하나의 카테고리를 선정하고 심리적 링크를 설정해둠으로써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손쉽게 주의를 돌릴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생명체와 유사한 형상이나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는 인형은 위안으로서의 수집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한정판 아트 토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패션 매거진의 관점에서 라부부와 스퀴시멜로우의 성공은 정보 획득, 구매, 인증 등 소비의 전 과정을 콘텐츠화, 놀이화해서 소비자 참여를 늘리는 요즘 마케팅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라부부는 2010년대 이후 럭셔리 시장조차 무릎 꿇린 스트리트 패션 열풍과 맞닿아 있다. 패션 브랜드들은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스트리트 패션과 서브컬처에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고, 라부부는 어떤 룩에든 키치함과 위트를 더해주는 완벽한 액세서리였다. 리사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순간부터 라부부는 이미 장난감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이었다. 그것이 라부부의 바이럴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워주었다. 라부부 열풍은 2025년 중순을 기점으로 서서히 진정되는 추세다. 앞서 말했듯 팝마트 주가도 조정을 받는 중이고, 리셀가도 하락세다. 희귀템으로 남기에는 시장이 너무 커졌는 데 그렇다고 물량을 풀면 희소성이 떨어져서 소비자들이 흥미를 잃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2025년 6월 중국 <인민일보>가 “라부부의 블라인드 판매 방식이 자제력 부족한 아동, 청소년의 충동구매를 부추기고 그들을 구매 중독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보도한 것도 투자자들에게는 악재였다. 라부부가 양배추 인형처럼 한때의 추억이 될지 헬로키티, 스누피, 포켓몬처럼 스테디셀러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귀여움 경제의 파괴력이 증명된 만큼 라부부의 성공을 배우고 응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라부부 신드롬을 분석할 때 자주 회자되는 개념이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 유아도식)’다. 인간은 큰 눈, 둥근 얼굴, 작은 코, 통통한 뺨 같은 유아적 특징에서 귀여움을 느끼고, 이 감정이 돌봄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귀여움에 열광하는 건 취향이나 유행이 아니라 인간 진화와 관련된 문제다. 눈·코·입 없이 귀여운 것도 많다. 과일, 꽃, 음식, 구름, 알록달록한 색채, 부드러운 촉감, 곡선의 배치 등 작은 디테일 하나가 ‘귀엽다’는 탄성을 자아내고,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외롭고 불안할 때 마음 붙일 상대를 찾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다. 물가는 치솟고 고용은 불안하고 정치와 경제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사방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AI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침범해오는 시대다. 이 험한 세상을 귀여움 없이 어떻게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무해하고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의 가치는 점점 커지면 커졌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건 다 분석을 위한 분석일 뿐이다. 귀여운 것에 열광하는 우리의 마음은 ‘귀여워서 귀엽다고 했는데 왜 귀엽냐고 물으신다면…’에 가깝다. “귀여워!” “큐트!” “가와이!”라는 반응이 먼저고, 생각은 나중이다. 즉 귀여움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힘이 세다. 귀여운 데 장사 없다. 라부부를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도 털이 북슬북슬한 거구의 사내라든가 반듯하게 각진 명품 백이라든가 동그란 자동차 전조등이라든가 제 눈에만 귀여운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우리에게는 더 많은 귀여움이 필요하다. 그것 만이 칙칙한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므로.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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