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플랫폼이 바꾼 패션 시장의 질서
최대 할인, 특급 배송. 알리·테무·쉬인 등 초저가 플랫폼이 패션의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BY 에디터 양윤영 | 2026.01.19“배송이 완료됐습니다.” 띠링, 알림이 울린다. 일주일 전 초저가 플랫폼에서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다.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감에 보상 심리를 억누르지 못한 채 결국 인터넷에서 쓸데없고 귀여운 것들을 마구 사버렸다는 뜻이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때마다 터지던 도파민, 택배가 통관을 거친 후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느껴지던 설렘은 박스를 여는 순간부터 씁쓸함으로 변한다.
레이스 스커트는 고등학교 반 티셔츠보다도 질이 나빠 도저히 밖에 입고 나갈 수 없고 함께 주문한 손바닥만 한 크롭트 티셔츠는 한 번 입었을 뿐인데 벌써 목이 늘어났다. ‘실패해도 커피 한 잔 값인데 뭐.’ 값싼 가격과 번듯한 이미지에 홀린 듯 주문한 옷들은 오늘도 옷장 한편에 그대로 처박힌다. 쇼핑에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지구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죄책감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뒤 찾아오는 후회처럼 뒤늦게 밀려온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유튜브에는 ‘테무깡’ ‘알리깡’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초저가 플랫폼 성공 후기는 SNS 피드를 넘길 때마다 업데이트된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
중국발 초저가 플랫폼, ‘C-커머스’의 성장이 패션 생태계의 질서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빠른 상품 회전율, 극단적으로 낮은 가격, 간편한 직배송 시스템을 앞 세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은 매서운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를 슬로건으로, 기존 유통 질서를 파괴하는 초저가 정책을 내걸고 고물가 시대 위축된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 1위는 알리익스프레스였다. 같은 해 글로벌 모바일 시장 데이터 분석 업체 센서타워가 집계한 국내 시장 앱 다운로드 성장 순위에서도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 쉬인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단순히 주류 시장에 일시적으로 진입한 수준을 넘어 초저가 플랫폼이 일상에 채널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와이즈앱·리테일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초저가 C-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5년 6월 기준 알리익스프레스의 MAU는 약 905만 명, 테무는 800만 명, 쉬인은 220만 명 수준이다.
고물가로 전반적인 패션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례적인 성장 곡선이다. 같은 기간 앱 실행 횟수 역시 꾸준히 증가해 사용자 참여도 또한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통계는 또 있다. 국내 광고 마케팅 포털 서비스 DMC 리포트는 2025년 8월 발표 기준 최근 3개월 내 의류를 구매한 소비자 중 60.3%가 중저가 브랜드 중심으로 소비했다고 응답했다. 1년 전 대비 15.9%p 증가한 수치다. 특히 30대 여성층에서 중저가 선호가 두드러졌으며 언더웨어, 홈웨어, 여성의류, 유아동복 순으로 중저가 구매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자주 구매하고 빠르게 교체되는 품목일수록 수요가 몰린다는 산업계 분석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직구 플랫폼의 오프라인 진출
최근 온라인 기반이던 초저가 플랫폼들은 잇달아 오프라인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서울 도심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쉬인은 ‘패션의 심장’으로 불리는 파리 마레 지구에 첫 상설 매장을 마련했다. 온라인에만 존재 하던 초저가 플랫폼이 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오프라인 공간에 뛰어들었을까? 이는 일회성 마케팅 이벤트가 아닌 브랜드와 패션 생태계를 재정의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먼저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에서 직면한 과제는 명확했다. 초저가라는 강력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품질 불신, 가품 논란, 긴 배송 기간에 따른 부정적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리익스프레스는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돌파구로 선택했다. 팝업 스토어를 구성할 때 중국산 초저가 제품이 아닌, 한국 브랜드 전용관 ‘K-베뉴’ 입점 상품을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했다. 알리에서도 믿을 수 있는 국내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에 포토존과 체험형 이벤트를 더해 방문 경험이 SNS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설계했다. 오프라인 방문이 온라인 앱 다운로드와 신규 가입으로 이어지는 ‘O4O(Online for Offline, Offline for Online)’ 구조를 촘촘히 분석한 결과다. 직구 플랫폼을 넘어 트렌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쇼핑 채널로 인식을 전환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동시에 수수료 면제 정책과 오프라인 쇼케이스는 국내 셀러를 유인하기 위한 전략으로, 쿠팡과 네이버가 주도하는 국내 이커머스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파리 백화점의 2000원짜리 옷
글로벌 패스트 패션 기업 쉬인은 파리 BHV 백화점에 첫 상설 매장을 열었다. 개장과 동시에 수백 미터의 긴 줄이 형성되며 흥행 조짐을 보였지만, 같은 날 프랑스 정부는 쉬인 온라인몰의 접속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플랫폼 내에서 아동·청소년을 연상시키는 성인용 인형 판매, 살상 무기 유통 등이 적발된 데 따른 조치였다.
이는 초저가 플랫폼의 그림자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소비자 일부는 가격 경쟁력에 열광했지만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환경 파괴, 불투명한 공급망, 불법 상품 판매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파리 중심가의 명문 백화점 BHV는 쉬인 입점을 계기로 브랜드 이미지 논란에 휩싸였고, 일부 유명 브랜드는 매장 철수라는 강수를 두었다. 쉬인의 오프라인 진출은 초저가 이미지 탈피를 위한 승부수였지만, 불투명한 플랫폼 관리 체계가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여론의 역풍을 불러온 셈이다.
쉬인의 초저가 전략은 그간 패션 브랜드들이 설정해온 가격과 공급망 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기존의 대형 브랜드들은 예측 가능한 생산 일정과 품질 관리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반면, 초저가 기업들은 ‘테스트 앤 리피트 (Test-and-Repeat)’와 같은 소규모 생산 기반의 전략으로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며 저비용 고효율을 창출한다.
이들은 수천 개의 소규모 제조 시설을 활용하며,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출시한다. 또한 디지털 판매 중심의 구조를 통해 디자인-생산-소매-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을 단축시키며, 신속한 반응과 취소 가능한 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재고 리스크를 줄이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다. 문제는 이 효율성이 외부 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대량 생산과 빠른 폐기는 섬유 폐기물 증가와 온실가스 배출을 비롯한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EU 국가들이 초저가 패션 규제 논의를 본격화하는 건 이 때문이다. 저가 소포에 대한 관세 신설 논의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지속 가능한 쇼핑을 위하여
초저가 플랫폼의 확산과 가성비 중심 유통 구조의 고착화는 소비자의 인식과 실제 행동 사이에 점점 더 뚜렷한 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쿠팡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반복된다. 물류 노동 환경과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일부는 여전히 빠른 배송과 가격 경쟁력이라는 실질적 효용을 이유로 플랫폼 이용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윤리적 무관심이라기보다 윤리적 선택이 곧 시간과 비용, 편의성의 손실로 직결되는 소비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반응에 가깝다. 특히 패션 영역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작동한다. 지속 가능성을 중시한다고 인식하는 소비자조차 실제 구매 단계에서는 가장 싸고 빠른 선택지로 이동하는 경향이 반복되고, 초저가·초고속·초편의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플랫폼 환경은 숙고의 여지를 점점 더 줄여왔다.
그 결과 지속 가능성은 구매를 결정하는 확실한 기준이 아닌 여유가 허락될 때만 고려되는 조건으로 밀려났다. 쉬인과 테무의 성장, 쿠팡 논란 이후에도 소비 행태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유통 구조가 이미 시장의 기본값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저가 의류 플랫폼은 이제 패션 사업의 변두리가 아닌 일상 소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물가와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한 초저가 플랫폼에 대한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겠지만, 품질 신뢰 문제, 환경 부담, 플랫폼 관리 책임, 각국의 규제 논의가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오르며 초저가 전략은 분명한 시험대에 올랐다.
사진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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