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본부터 판형까지, 책의 형태를 실험하다 #독립출판의 세계

찢긴 페이지를 그대로 제본하거나, 디지털 화면의 감각을 표지에 옮기는 등 매체로서의 책을 다시 정의한 작업들. 형태로 먼저 말을 거는 독립출판물을 소개한다.
BY 에디터 임수아 (프리랜서) | 2026.01.23
어떤 말하고자 하는 욕망은 ‘쓸모’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지곤 한다. 세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삶이 있는데, ‘잘 팔리는 책’의 공식앞에서 누군가의 생은 쉽게 지워진다. 명확한 지표와 판매량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논리가 일상의 언어에 자연스레 스며든 지금, 저 마다의 이유와 속도로 책을 만들려는 이들이 있다. 기획부터 편집, 디자인, 제작, 유통까지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수행해 책을 출판하는 이른바 ‘독립출판’의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혼자 책 만드는 사람들
출판 환경은 여전히 대형 서점과 기성 출판사 중심이지만, 주류의 흐름을 따르지 않은 채 자신만의 책을 펼쳐내는 이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독립출판의 축제라 불리는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는 지난 10월, 214개의 독립출판팀이 참여해 국립중앙도서관을 저마다의 개성으로 수놓았다. 17회를 맞은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역대 최다인 251개 팀이 참가했고 2만 명 이상의 방문자를 기록했다. 작가, 디자이너, 사진가, 1인 출판사, 기획자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든 책이 한데 놓이고, 그 자리에서 판매와 유통, 교류와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두 페어 모두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개최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는 사실은 독립출판이 소수의 실험이 아닌 하나의 출판 흐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유통 및 제작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독립출판 전문 유통 플랫폼 ‘인디펍’은 전국 독립서점부터 대형 서점까지 책을 입고하고 판매할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곳에 책을 등록한 독립출판팀이 약 2000개에 달한다. 한편 교보문고의 바로출판, 부크크, 유페이퍼와 같은 자가출판(POD)플랫폼을 활용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책을 출간하는 이도 많아지고 있다. 2025년 상반기 교보문고 시 분야 베스트셀러 3위에 오른 차정은 시인의 시집 <토마토 컵라면>은 이러한 자가출판 방식이 대중 시장에서도 유의미한 반응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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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차례대로) Aesthetics on Ebay 이베이에서 본 아름다운 물건들을 모아 만든 책. 표지에 렌티큘러 카드를 덧대어 여러 제품을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by sleeppress, 3만원. ornamental gloves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자의 이야기를 장갑과 수어를 활용해 담아냈다. 실의 색과 직물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미지로 창작의 과정을 따라가는 느낌을 더했다. by 김미소, 1만9천원. copy a copy 복사기를 통해 여행에서 발견한 물건과 일상 속의 사물을 이미지화한 뒤 변형해 작업한 아트 북. 본래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는 작업물을 통해 사물의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나간 기록을 엮었다. by 영민,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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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차례대로) 식물장례식 식물의 다양한 사망 원인과 그에 따른 장례 절차를 소개하는 소책자. 식물 일러스트와 사진을 초록빛으로 인쇄했다. by 강민정, 2만4천원. 돌과 말 돌에 새긴 100개의 단어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책. 돌을 주인공으로 삼아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란을 겪는 등의 여정을 그렸다. by 쿠쿠루쿠쿠, 1만2천원. A Walk to the Grove 도예가가 작업실을 떠나 환기를 위해 숲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한 장면을 그려낸 화집. 한지에 수놓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by Rosie Grove, 2만원.
‘책’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며
책이라는 매체 자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바라보는 것도 독립출판물을 향유하는 재미있는 지점 중 하나다. 일부 독립출판물은 판형, 종이, 제본 방식과 같은 텍스트 바깥의 요소를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영민 작가의 를 예로 들자면, 이 책은 복사기를 통해 사물의 물성을 탐구하고, 이를 이미지로 담아낸 아트 북이다. 이때 울퉁불퉁하게 찢긴 트레이싱지를 촬영한 이미지를 넣은 뒤 실제로 한 페이지는 찢긴 채로 바인딩해 두 층위의 물성을 대비시켰다. 한편 슬립프레스(sleep press)의 의 경우 디지털 시장의 이미지를 아날로그 매체인 책에 옮긴 작업인데, 표지 작업에 렌티큘러를 활용해 온라인 페이지의 시시각각 바뀌는 화면을 구현했다. 이처럼 매체 자체에 대한 실험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독립출판물의 매력이다.

사진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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