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여인

조안 조나스(Joan Jonas)에게 가면은 남다른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비워내는 장치다. 요란한 인간의 세계를 벗어나 자연과 공생하는 조나스의 평화의 정원.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1.28
가면을 쓴 조안 조나스. photo by Toby Coulson
가면을 쓴 조안 조나스. photo by Toby Coulson
“야외에서 자연의 정령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 방식일지도 모른다. 특히 나의 개들처럼 각별한 영혼을 지닌 동물들은 내 작업에서 동물 조력자로 등장한다.” - 투영에 대한 성찰: 조안 조나스 인터뷰, 2019
무성 필름 <바람>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촬영한 16mm 무성 필름 <바람>, 1968.
1968년 뉴욕 롱아일랜드, 눈 덮인 해변에서 서로의 등을 맞댄 사람들. 이 낭만적인 흑백 필름은 조안 조나스의 비디오 실험작 <바람>이다. 퍼포머들은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바람의 움직임에 흔들린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인간은 환경파괴와 기술의 가속화가 야기한 불안함 속에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는 50여 년 동안 지속적인 진화를 거듭해온 작가의 궤적을 되짚고 탐색할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다.
조안 조나스
50여 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해온 조안 조나스 . Photo by Maximilan Geuter
올해로 90살이 된 조나스는 비디오와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 동시대 미술의 여러 영토를 유려하게 넘나들며 독보적인 세계관을 쌓아 올린 선구적 예술가다. 2024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예로운 순간을 축적해온 그는 1936년 뉴욕에서 출생했다. 미술사와 조각을 공부한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뉴욕은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거대한 허구가 민낯을 드러내던 시기. 1950년대까지 미국을 지탱해온 기성 질서에 대한 환멸을 바탕으로 신좌파가 주도한 청년 문화가 등장했고, 인종차별과 베트남전쟁 등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저항 운동이 물결치던 시대였다. 산산조각 난 아메리칸 드림의 잔해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권위주위를 타파할 것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남성 위주의 편협한 영웅주의, 미국이 평화를 수호한다는 거짓된 이상주의의 반대편에서 태동한 맹렬한 시대정신은 뉴욕을 정치적, 예술적 수도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블 루나 도그스(Double Lunar Dogs)>, 1984.
<더블 루나 도그스(Double Lunar Dogs)>, 1984. © Joan Jonas/Gladstone
조나스는 이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작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 1964년 역시 뉴욕 소호로 거처를 옮긴 백남준과는 가까운 이웃이기도 했다.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것 은 견고한 질서를 해체하고 무질서에 몸을 맡겨보고자 했던 이들 예술가가 지닌 잠재성과 꿈일지도 모른다. 그 무렵 영화 계에도 새로운 운동이 관측됐다. 할리우드 시스템이 지배하던 무료한 상업 영화에 저항한 언더그라운드 영화들이다. 이는 캠코더 보급이라는 기술적 변화와 맞물리며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1967년 소니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 포타팩(Portapak)이 그 주인공이다. 조나스를 비롯 백남준, 앤디 워홀, 리처드 세라, 브루스 나우먼 등의 작가는 비디오를 새로운 매체로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요나스 메카스, 마이클 스노와 같은 실험 영화 감독들도 필름의 물질성을 고수하는 한편 이를 영화적 실천의 새 변주로 받아들였다.
버티컬 롤( Vertical Roll)
비디오의 특성을 바탕으로 시각적 실험을 전개한 <버티컬 롤( Vertical Roll)> 설치 전경, 1972. © Joan Jonas/Gladstone
조나스는 초기작 <바람>을 16mm로 촬영한 후, 1970년 일본 여행에서 포타팩을 손에 넣고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나갔다. 작가는 비디오카메라와의 만남을 급진적인 순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포착하는 관찰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백남준이 비디오카메라를 조각적 질료로 재배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조나스는 이를 자신이 해오던 퍼포먼스의 청중으로 초대한다. 비디오카메라와 결합된 작가와 퍼포머의 몸은 더욱 자유롭게 표현됐고, 이는 이미지를 통한 여성 신체의 해방을 만들어냈다. “시, 조각, 영화, 댄스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는 그의 세계는 여러 매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특정 매체에 귀속되지 않는 초월적 시선은 작가의 고유한 인장이 됐다.
강으로부터 심해의 평원으로
자연의 리듬을 몸짓으로 나타낸 <강으로부터 심해의 평원으로>, 2021. © Joan Jonas/Gladstone
조나스의 세계가 지금 더욱 유효한 까닭은 그가 세상의 사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있다. 가령 비디오와 드로잉, 사운드가 어우러진 설치 작품 <강으로부터 심해의 평원으로>에서 영상 속 퍼포머들은 자연의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액체적 여정을 재현한다. 손으로 그려낸 드로잉은 존재의 기원을 탐문하며, 이때 인간은 자연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의 위치가 아닌 이들과 함께 공존하는 조력자로 자리한다. 인간을 문명의 주인으로 보지 않고 세계를 구성하는 동등한 위치의 계열체로 여기는 작가의 예술적 실천은 ‘소수자 되기’로 이야기할 수 있다. 동물의 형상을 한 가면, 새의 움직임을 기록한 드로잉, 그가 여행하면서 수집해 온 각 나라의 신화와 설화는 전시장 안에서 순환하고 공명하며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이곳은 생명의 리듬과 우주적 에너지가 들끓는 근원적인 시공간이다.
<시내, 강, 비행, 패턴 III>에 등장한 동물 가면을 쓴 작가.
<시내, 강, 비행, 패턴 III>에 등장한 동물 가면을 쓴 작가.
조나스의 급진적 실천이 궁극적으로 가닿는 곳은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어우러졌던 태초의 정원이다. 이처럼 작가는 소비의 대상 혹은 착취의 대상이 된 자연과 동물들을 퍼포먼스의 주체로 위치시킴으로써 인간 중심의 현대문명에 온화한 파문을 일으켜왔다. 비디오, 드로잉, 오브제로 구성한 설치 작품 <시내, 강, 비행, 패턴 III>에서는 베트남 하노이 근교에서 목격한 종이 연을 천장에 설치하고, 스크린에는 이탈리아, 싱가포르, 미국, 스페인 등을 여행하면서 목격한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한데 모았다. 작가가 방문했던 서로 상이한 장소와 기억이 위계 없이 중첩되는 동안, 새의 이미지는 분리된 것 같은 이미지들을 하나로 엮으며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했던 이분법적 구분선을 무화시킨다. 이들 작품은 동시대 인류가 직면한 2가지의 위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인류세의 영향 아래에서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질병을 경험했고, 이제는 인류의 존속을 의심하게 하는 기후 위기 속에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예상보다 빠른 진화로 인간만이 누려왔던 지위의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조나스는 우리에게 대안적 실천을 제시한다. 작가는 2000년대 이후부터 전 지구적으로 사유를 확장하면서 인간이 마주한 기후 변화와 생태적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구의 또 다른 주인인 타자들과의 공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전시 《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에서도 그는 생태계 오염으로 많은 생물이 멸종되고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인간이 자연과 대립 관계가 아닌 공존 관계를 성립해야 함을 어린아이들의 몸짓들을 빌려 보여준 바 있다.
아름다운 개
작가의 반려견 오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비디오 작품 <아름다운 개>, 2014. © Joan Jonas/Gladstone
2014년 작품 <아름다운 개>는 작가의 반려견 오즈(Ozu)의 목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촬영한 영상 작업이다. 우리는 작업 앞에서 잠시나마 오즈의 발걸음으로, 작은 동물의 시선으로 세계를 감각하게 된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예측과 달리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임에도 어떤 장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캐나다 케이프브레턴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 사이에 자리하던 간격이 무용함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빈 방>은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사라진 존재와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작가의 오랜 협업자인 제이슨 모런이 작곡한 피아노의 선율과 함께하는 이번 전시는 삶의 섭리를 사유하도록 이끈다. 이때의 삶이란 치열함과 냉혹함이 부딪히는 메마른 뉴욕의 풍경이 아닌 동물과 자연이 평등하게 어우러져 서로의 존재를 끌어안는, 생명력이 무성하게 우거진 평등한 정원의 모습에 가깝다. 50여 년에 이르는 그의 이러한 예술적 여정은 대체로 급진적인 행위로 불렸으나, 작품의 감상 끝에 마주하게 되는 정동은 오히려 원시적이고 보편적인 생명의 리듬이다. 미국의 연구자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주장하면서 ‘함께 만들기(Sympoiesis)’의 관계를 맺을 것을 제안했다. 조나스의 세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동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주인공의 자리에서 벗어나기, 나 아닌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기. 그리고 우리는 결국 소멸할 존재임을 계속해서 자각하기. 이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미덕일지도 모른다.
writer 문주화 영화 평론가. 동시대 예술에서 비평이 수행하는 다양한 실천적 영역에 관심이 있다. 2025년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무관한 당신들에게>를 기획했으며,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다.

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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