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따라 해안선 따라! ① 제주, 기장, 태안 여행
한 끼의 선택이 지구를 구한다.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이 대한민국 해안가를 따라 펼쳐낸 로컬 미식 여행.
BY 에디터 김초혜, 김초혜 | 2026.02.25우리가 매일 즐기는 한 끼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면? 매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행위가 지구 환경을 위하는 길이 되고, 아름다운 동식물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책 <로컬 오딧세이: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은 ‘로컬의 미식’을 찾아 즐기는 일이 나의 하루와 지구의 하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롭고 즐거운 맛이 넘쳐난다.

writer 장민영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의 대표이자 전국의 계절 식재료와 잊혀가는 우리 음식을 찾아다니는 음식 탐험가.
옥빛 바다에 해녀의 숨 스미고, 우영팟에 바람의 맛 여물고
제주(JEJU)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이자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한 제주에서는 외국어처럼 생경한 방언에 한 번, 화산과 바람이 빚은 토양과 바다가 함께 길러낸 식재료의 맛에 두 번 놀라게 된다. 다양한 시트러스와 방풍나물, 초피, 메밀, 독활, 고사리, 재래 흑돼지, 풋마늘, 뿔소라, 옥돔, 과즐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맛이 존재한다. 수백 년간 차곡차곡 쌓인 미묘하고 복합적인 맛의 언어는 제주만의 독립된 미각 세계를 만들어왔다. 제주는 소개하고 싶은 맛이 너무 많아 늘 고민이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다양한 한국의 시트러스를 살펴보자.
제주의 다양한 감귤류는 이 지역의 고유한 생물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레몬이나 라임 같은 수입산 식재료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속 가능성이란 결국 자원을 얼마나 절제력 있게 선‘ 택’하느냐에서 출발한다. 제주의 오리지널 시트러스라 불리는 댕유지는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새콤달콤한 과육의 맛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풍부한 아로마를 간직하고 있다. 제스트와 과즙을 활용해 독특한 드레싱을 만들거나 디저트로도 표현할 수 있다. 하귤, 팔삭, 금귤 같은 시트러스도 한번 경험해 보자. 여태 알던 향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제주의 다양한 시트러스를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제주민속오일장의 ‘할망장터’다. 시트러스뿐 아니라 할머니들이 예부터 드셨던 재미난 제주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제주 먹고사리, 이제 막 돋아난 향기로운 초피잎 등 제주의 맛을 완성하는 재료들을 만날 수 있는 보물 상자 같은 곳이자 계절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담긴 장소다.
은빛 멸치와 바다숲을 품은 풍요의 바다
기장(GIJANG)

늦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가장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은 부산 기장이다. 기장은 동쪽의 망망대해와 서쪽의 험준한 산세에 둘러싸인 한때 변방의 방어진이자 고립된 어촌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멸치, 곰장어, 말똥성게, 말미잘 같은 바다의 신선한 식재료와 정구지(부추), 초피, 원추리 등 산과 들에서 여물어온 보물 같은 먹거리로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기장 앞바다는 거친 파도가 부서진다. 하지만 그 덕에 바닷속에는 산소와 플랑크톤이 넘쳐난다. 이런 이유로 예부터 기장의 미역과 다시마, 서실, 감태 같은 해조류는 최고로 여겨졌다. 맛있는 해조류가 자라기에 최적인 바다 환경 덕에 자연스레 바다 안에 숲이 조성되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치어를 키우며 살아가기에도 좋은 곳이 됐다. 아마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은 고장이 된 이유 역시 이런 맛있는 바다 덕이었을 것이다. 바다숲이 울창하니 해조류를 먹고 살아가는 성게, 전복, 소라 같은 것들도 풍부하다.
만약 당신이 지금 기장으로 떠난다면 ‘앙장구’라 불리는 말똥성게를 꼭 맛봐야 한다. 쌉싸래하면서도 달큰하고 부드러운 맛을 지닌 이 성게는 귀하디귀한 기장의 맛이다. 기장 사람들은 날로 먹어도, 익혀도 맛 좋은 앙장구를 통째로 쪄서 먹기도 했다. 커다란 솥에 성게를 우루루 쏟아 넣고 쪄서 밤 까먹듯 즐겼다는데, 우리도 이런 호사 한번 누려보면 어떨까. 성게는 해조류를 어마어마하게 먹고 자라 바다숲을 파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참고로 바다숲은 육상의 숲보다 많게는 50배나 되는 탄소를 흡수한다. 우리가 해조류를 많이 먹어 바다숲을 키우고, 성게를 많이 먹어 바다숲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게를 먹는 일이 지구에 도움이 된다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기장의 먹거리는 끝이 없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이 없는 풍선말미잘로 만든 탕과 수육, 전이다.
특히 풍선말미잘은 붕장어를 잡는 과정에서 함께 걸려 올라오는 ‘부수 어획물’이다. 이런 어획물은 용도가 없으면 폐기하기 일쑤지만, 누군가의 작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특산물도 지역 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기장의 말미잘 요리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건져 올린 말미잘을 버리지 않고 식탁에 올리는 일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낭비 없는 선택이다.
물과 물의 경계, 갯벌이라는 연금술사
태안(TAEAN)

복잡한 해안선이 특징인 태안의 지형은 조석 간만의 차가 8m나 되는 서해와 만나 광활한 갯벌을 만들어냈다. 천체의 운행과 함께 호흡하는 갯벌은 온갖 생명의 보금자리이자 태안 사람들의 삶터였다. 칠게, 갯가재, 망둥이, 조개, 자염, 칠면초, 박, 아말피레몬…. 이 모든 것이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완성된 태안 식문화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이루는 주인공이다.
아워플래닛의 모든 요리에는 태안 자염을 사용한다. 자염은 글자 그대로 ‘끓여서 만든 소금’이다. 이 같은 전통 제염 방식은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점차 천일염에 밀려 사라져 갔다. 그러던 중 2001년, 태안에서 50년 만에 갯벌에서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전통 소금을 만드는 방식이 되살아났다.
“옛날에는 자염을 화염이라 했어요. 천일염은 왜염이라 했지요(천일염 방식은 일제강점기의 제염식). 김치든 젓갈이든 화염으로 해야 맛이 좋았어요. 그러다가 천일염 방식이 만들기도 쉽고 생산량도 많다 보니 점점 화염을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었지요. 화염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드물어졌어요. 이렇게 우리 소금을 만드는 전통 방식도 사라져갔어요. 천일염은 맛이 없다고 쳐다도 안 보던 사람들도 별수가 있나요? 화염이 없으니까 적응해야지요. 그래도 이 문화가 영영 없어질까 봐 다시 만들고 있어요. 바닷물을 단순히 끓인다고 자염이 되는 건 아니에요. 갯벌에서 소금 흙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손이 많이 가지만, 내가 안 하면 이 맛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기후 변화 탓에 이런 전통 방식도 곧 영영 소멸될지 몰라요. 진짜 얼마 안 남았지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전통의 맛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고집스레 태안 자염을 이어가고 있는 정낙추 대표의 말이다. 갯벌의 수많은 맛 가운데, 이것이야말로 맛은 물론 지속 가능한 한국 식문화를 위해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태안의 보물이다.
글
장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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