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따라 해안선 따라! ② 속초, 울릉도, 거문도 여행
한 끼의 선택이 지구를 구한다.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이 대한민국 해안가를 따라 펼처낸 로컬 미식 여행.
BY 에디터 김초혜, 김초혜 | 2026.02.27우리가 매일 즐기는 한 끼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면? 매일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행위가 지구 환경을 위하는 길이 되고, 아름다운 동식물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책 <로컬 오딧세이: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은 ‘로컬의 미식’을 찾아 즐기는 일이 나의 하루와 지구의 하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롭고 즐거운 맛이 넘쳐난다.
신선한 삶에 헌정하는 녹진한 바다의 맛
속초(SOKCHO)

속초를 사랑하지 않는 여행자가 있을까? 설악산과 동해, 영랑호와 청초호같은 석호가 어우러진 지형은 속초만의 생태적 다양성을 만들었고, 그 위에서 속초 사람들은 풍요로운 식탁을 키워냈다. 홍게, 부새우, 골뱅이, 송순, 고리매, 지누아리 같은 낯선 재료는 ‘맛집’만 쫓는 여행자의 시선엔 잘 포착되지 않는 속초의 참맛을 선사한다. ‘‘배 타는 함경도 남자를 만나 속초에서 녹초가 됐다”는 농을 던지는 이귀하 할머니는 동네에서 ‘홍게 아마이’로 통한다. 통통한 홍게 다리 살을 발라 달걀과 함께 부쳐내는 홍게전은 할머니의 시그너처 메뉴.
꼭 맛봐야 할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감자떡이다. “감자떡 좀 쪄줄까- 한번 먹어볼래?” 누구나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손으로 꼭 쥐어 만든 강원도의 감자송편, 감자떡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놓는 건 생각지도 못한 생선찜이다. 동네에서 감자떡이라 불리는 이 생선의 진짜 이름은 주먹물수배기.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며 식재료를 취재해온 내게도 생소한 녀석이다. 울퉁불퉁반투명한 모양새가 꼭 쥐어 쪄놓은 감자떡을 닮았다 해서 이렇게 부른다.
“옛날에는 홍게가 워낙 귀해서 살을 발라 손님에게 팔기 바빴고, 우리는 감자떡을 먹었어. 여기가 죄다 판잣집이었는데 집집이 감자떡을 쭉 내걸어 말렸다가 쪄 먹었더랬어. 생긴 건 이래도 찌면 얼마나 쫀득하고 맛있는지 몰라. 없으면 우리 아바이가 식사를 안 할 정도라 매일 상에 올렸지.” 설명을 들을수록 맛이 어찌나 궁금한지. 누구든 한 입 먹어보면 감자떡이 상에 오르지 않으면 식사하지 않았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해 자꾸만 젓가락이 향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감자떡은 홍게 통발에 우연히 걸려들어 뱃사람의 배를 채워주던 기특한 생선이었다. 값싸고 맛까지 좋아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 늘 든든한 한 끼가 돼주었으니, 누군가는 그 못생긴 얼굴마저 정겹고 귀엽게 여겼을지 모른다. 지금은 중앙시장에서 가끔 아는 이들만 찾아 먹는 별미 생선이 됐다.
아워플래닛 다이닝 행사에서는 이를 프렌치 요리로 선보였는데, 손님들이 가장 극찬한 요리 중 하나였다. 그러니 운 좋게 시장에서 발견한다면 꼭 구입해보자. 소금만 뿌려 오븐에 구워 먹어도 환상적인 속초의 맛이 난다.
어화로 수놓은 밤바다, 그리운 맛을 싣고서
울릉도(ULLEUNGDO)

동해 한가운데 자리한 화산섬, 울릉도. 지리적 고립 속에서도 울릉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가 베푸는 진귀한 자원을 바탕으로 식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우리나라 어느 땅, 어느 바다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감탄이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곳이다. 오징어, 명이, 새우처럼 익숙한 식재료뿐 아니라 왕호장, 섬말나리, 섬엉겅퀴, 야생 회향, 대황 등 외딴섬이기에 가능했던 독특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다.
울릉도의 이런 특별한 식재료는 우리 식문화의 잊힌 이야기이자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유산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섬은 동해 한복판에 불쑥 솟아 있는 화산섬이다. 대양 위를 흐르던 구름도 잠시 쉬어 가는 곳인지라 섬 위에는 구름이 자주 머문다. 구름과 해무가 물러간 뒤 섬에서 다시 바라본 바다는 청량하고 시원하기만 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무엇 하나 걸리지 않는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산맥이 험한 지형은 바닷속 지형도 험하다고 한다. 울릉도의 장대한 절경은 바다 아래까지 이어진다. 물결을 따라 하늘하늘 춤추는 대황 숲을 지나 석벽을 따라 내려가면, 얼굴이 시릴 만큼 차가운 조류가 온몸을 감싼다. 거대한 직벽을 따라 자리돔 떼의 군무가 펼쳐지고, 호기심 많은 졸복 무리가 주위를 맴돌며 조심스레 시선을 맞추는 곳이다.
조금 더 먼 바닷속에서는 뱅에돔 무리가 영롱한 비늘을 반짝이며 유영한다. 울릉도와 독도의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해양 원시림을 만난 듯한 생각이 들 지경이다. 다양하고 독특한 바다 먹거리 가운데 지구에도, 나에게도 이롭고 맛있는 것을 꼽자면 단연 대황이다. 와일드한 동해의 테루아를 입안 가득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울릉도 사람들이 많이 먹는 대황나물을 회, 특히 흰살생선회와 함께 먹어보자. ‘그래, 이게 울릉도의 맛이지!’ 하고 생각하게 될 테니.
제국의 기억을 간직한 바다, 그 바다의 대물들
거문도(GEOMUNDO)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푸르른 거문도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 거친 물살이 섞이는 곳이다. 이 바다는 복잡한 암초와 해저 지형이 만든 천혜의 어장을 품고 있으며, 우리 근대사의 격동을 간직한 현장이기도 하다.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와 큰 등대가 한자리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예부터 얼마나 중요한 바다였는지 알 수 있다. 사납고 거칠기로 소문난 거문도 앞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덩치 크고 유영 속도가 빠른 삼치가 살기 좋은 곳이다. 실제로 삼치는 ‘바다의 스포츠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덕분에 거문도 삼치는 일제강점기 때 특히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겨울철에 삼치 파시(바다장)가서뿌믄 동도, 고도, 서도가 다리도 없이 쭉 이어졌고먼. 배만 밟아갔고도 옆 섬으로 건너갈 수 있었은께. 어메어메 그야말로 바다가 배로 까뜩 찼지라. 그라고 몰려든 배들이 잡아올린 삼치는 죄다 일본으로 수출돼불고, 육지 사람들은 시방 제대로 된 삼치는 먹도 몬했어. 고시(새끼 삼치)를 궈다 먹고는 삼치라고 생각했은께. 우리가 보기엔 딱한 노릇이재. 그란디 별수 있나. 삼치를 금값 쳐주니 어쩔란가. 일본에 팔아야 돈이 되재.” 고도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부의 말이다.
다행히 지금은 길이가 130~150cm에 달하는 제대로 된 삼치를 육지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겨울철 기름이 잔뜩 오른 삼치회 맛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꼭꼭’ 먹어봐야 한다. 지금껏 접했던 삼치는 잊어도 좋다. 생선은 역시 다 자라 큰 것이 맛이 최고이니 말이다.
거문도식 삼치회 삼합은 초장이나 와사비 간장과 함께해서는 제맛을 느끼기 힘들다. 거문도 어머니들이 만드는 특제 양념간장(양파 가득 넣어서!)에 회를 푹 찍어서 돌김에 싸 먹어야 한다. 거기에 흰쌀밥 더하고 갓김치나 묵은지 올려 먹으면, 와~ 정말이지 세상 시름이 잊히는 맛이다. 이렇게 다 자란 생선을 먹는 것은 우리의 미식을 위해서도 너무 소중하다. 바다 생태계를 생각해서도 정말 꼭 필요한 일이니 완전히 자라지 않은 어린 생선 (특히 총알오징어 같은!)은 먹지도, 쳐다보지도 않기로 하자.
writer 장민영
지속 가능한 미식 연구소 아워플래닛의 대표이자 전국의 계절 식재료와 잊혀가는 우리 음식을 찾아다니는 음식 탐험가.
글
장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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