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봄의 공간들

3월의 자연은 보는 것보다 느끼는 쪽이 빠르다. 봄의 기척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공간 네 곳.
BY 에디터 송혜민 (프리랜스) | 2026.03.03
볕이 잘 드는 작은 마을, 호지
호지 이미지
강원도의 흔한 침엽수 산, 옥수수밭과 비닐하우스. 호지는 시야를 가로막는 담 없이 동네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것이 매력인 공간이다. 숙박 시설이지만 ‘감성’이라는 단어보다는 더 심오한 건축적, 자연적 철학을 담았다. 기존 휴양 건축의 문법을 완전히 피해가면서도 그만의 조용하고, 단조로운 ‘쉼’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시골 농가, 창고를 닮아 이질감 없이 주변 풍경에 녹아드는 몇 채의 건물은 원형의 보행로를 사이에 두고 마을을 이뤘다. 특별할 것 없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창고들이 잡초 위로 흩어진 듯한 풍경을 의도한 것이다. 하지만 마을을 잇는 보행로에 서면 건물로 가로막힌 덕에 아주 새로운 곳으로 떠나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국의 정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행로 아래의 무성한 정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옆 도로보다 한 뼘 정도 낮게 내려앉은 땅에는 물이 고여 있어도 잘 자라는 야생의 풀이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를 채우기보다는 잘 다듬는다는 마음으로 정원을 꾸몄다. 4년째 매만지는 정원은 이제 충분히 자리 잡아 그 자체로 어엿한 하나의 자연 역할을 한다. 이 곳에 머문다면, 가만히 멈춰 천천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그저 더위, 추위로 계절을 체감하는 도시에서와 달리 작은 새순으로도 계절을 알아차리는 것이 시골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의 풀잎을 바라보고, 해 뜨기 전부터 정원을 찾은 새들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 순간만큼은 작은 마을의 정원에서도 대자연 못지않은 충분히 깊고 아름다운 감상을 발견할 수 있다. 주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길 78 인스타그램 @hoji.co.kr
제주의 하늘과 나무를 향하는 건축, 유지커피웍스
제주 시내 한가운데 있는 팽나무 숲 인근에 지붕은 하늘로, 처마는 땅으로 향한 독특한 건축물이 등장한 건 1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유지커피웍스는 제주공항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시내이면서도 팽나무 숲과 한라산 자생식물, 백록담 북벽으로부터 내려오는 한천의 자연과 맞닿은 경계에 위치했다. 이 땅이 이미 가지고 있는 수백 년 된 나무들과 도시와 자연이 만나 만든 풍경을 새로 규정하기보다는 수용하며 공간을 만들었다. 500년이 넘은 조록나무, 300년 된 팽나무, 200살의 댕유지 나무, 한라산 자생식물 사이에 건축이 어떤 자세로 놓일 수 있는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거대한 박공지붕은 시선을 자연스레 하늘과 자연으로 향하게 하는 건축적 해법이다. 또 지붕 끝 처마는 땅에 닿을 듯이 나지막하게 작업해 제주 돌담에 시선을 맞췄다. 지붕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마당의 흙과 식생, 돌담 아래에 자라는 작은 풀들을 관찰하게 한다. 특히 봄이면 땅과 공기의 기운이 깨어나고, 손톱만 한 새잎이 올라오는 장면이 경이롭다. 지붕을 받치는 실내의 목조 구조는 나무의 형상을 해석해 외부의 자연물과 연결되는 질서를 이룬다. 산책로는 노란 제주 토종 유자나무들과 고사리류, 산철쭉, 초본류 사이를 지나도록 해 머무는 시간 자체가 자연을 경험하는 과정이 된다. 느리게 걸으며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라는 자연적 설계다. 사계절 색을 달리하는 풍경과 물소리, 젖은 흙의 냄새가 공간 체험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곳에 천천히 머물며 유지커피웍스를 둘러싼 많은 자연의 요소를 또렷하게 체감해보기를 바란다. 주소 제주도 제주시 오남로 297 인스타그램 @yuji_coffee_works
공간의 의미를 정의하는 자연, 박봉담
건축과 자연, 술과 양조라는 콘텐츠를 모두 품은 이곳은 한정된 공간이라기보다 열린 공원에 가깝다. 국순당의 옛 양조장을 리뉴얼한 박봉담은 화성시의 지역명 ‘봉담’에 공원(Park)을 결합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공원이라 설명한다. 박봉담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국순당의 대표 양조장이었다가 20년간 운영을 멈춘 채 닫혔던 시설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곳이다. 현대식 양조장과 스마트팜, 키친과 테이스팅 룸, 보틀 숍 등이 한자리에 모인 또 다른 의미의 공원인 것이다. 술을 중심으로 하되 양조와 테이스팅, 식음의 경험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자연과 건축, 휴식의 순간이 곳곳에 펼쳐지도록 했다. 특히 방문자들이 가장 긴 시간을 머무르는 키친과 테이스팅 룸에서는 안팎의 경계 없이 자연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공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옛 양조장의 긴 복도를 활용한 중정이 바라다보이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박봉담의 안과 밖을 잇는 뜰인 중정은 계절과 날씨, 시간의 흐름을 공간 안으로 전달한다. 빛과 공기, 햇살은 물론 비와 눈이 내리는 소리까지 품는 현대적 의미의 자연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술을 마시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중정의 풍경, 공간을 걷다 느끼는 공기와 빛의 변화처럼, 이곳을 찾는 이에게 자연은 의식하기보다 체감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건물 밖 아담한 정원의 단풍나무, 가지가 굽은 배롱나무, 모과나무는 양조장보다도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다. 지금은 새로 지어진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주소 경기도 화성시 효행구 봉담읍 매송고색로 452 인스타그램 @parkbongdam
한국의 삶과 기억을 담는 풍경, 메덩골정원
메덩골정원 이미지
봄이면 구불구불한 돌담 사이에 복숭아꽃, 진달래가 흐드러지는 풍경. 산수국이 정원을 뒤덮어 푸르러지는 여름. 3가지 구절초가 길을 수놓는 가을을 지나 기와지붕 가득 눈이 쌓이는 겨울까지. 이곳은 가장 한국적인 사계절이 흐르는 정원이다. 과거 어느 시절 메꽃이 만발하던 경기도 양평의 한 골짜기에 위치해 ‘메덩골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6 현대정원 오프닝을 앞두고 지난해 먼저 개방한 ‘한국정원’은 100년 넘게 끊겼던 한국 정원 문화의 맥을 다시 잇는다.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3가지 주제로 23만1400㎡ (7000평)가 넘는 땅에 한국 정원의 기준을 새로 썼다. 정원의 첫 번째 원칙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의 자리를 찾았다. 굽은 나무의 등은 억지로 곧게 세우지 않았고 땅의 결, 바람의 흐름, 햇살의 방향을 살펴 풀을 세우기보다 눕히듯 앉혔다. 두 번째 원칙은 한국인의 기억에 남은 풍경을 되살리는 것.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불러봤을 동요 ‘고향의 봄’ 가사의 풍경을 정원에 그대로 옮겼다. 돌배나무, 물철쭉이나 야생 소사나무 같은 소박하지만 깊은 생명력을 지닌 우리나라 자생식물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세 번째 원칙은 “예술가처럼 스스로를 극복하고 창조하라”는 니체의 말에서 찾았다. 과거의 양식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새롭게 만든 한국 정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병산서원을 재해석한 선곡서원, 프랑스 조경가와 함께 조성한 정원인 무영원의 초현실적 풍경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메덩골길 1 인스타그램 @medongaule

사진

ⓒ 호지, 이성범건축사사무소, 국순당, 메덩골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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