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노 세갈의 순간들

그가 구성한 공간에선 오직 기억과 경험만이 남는다.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한남동에서 티노 세갈과 <싱글즈>가 나눈 대화.
BY 에디터 심예원 | 2026.03.12
영국 출신의 작가 티노 세갈의 전시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 사진과 영상, 모든 기록을 금지한다는 것. 지난 3월 3일 리움미술관에서 공개된 그의 전시는 마치 아주 오래돼 기록이 남지 않은 어떤 이야기나 전설처럼 오직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후기가 이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이미지 없는 전시라니! 이 전시에서 금지된 것은 단 하나 ‘기록’이지만 이로 인해 관객의 경험은 완전히 뒤바뀐다. 티노 세갈의 작업은 조각이나 회화처럼 물질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움직임과 목소리,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전개된다. 일례로 그의 작업에는 ‘인터프리터(Interpreters)’라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작품을 표현하는 해석자이자 신체의 움직임과 언어를 통해 장면을 만들어내는 퍼포머다. 관객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인터프리터들은 처음에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움직임은 서서히 하나의 상황을 구성한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서 손을 맞대고 서로를 관찰하거나,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 같은 것. 이러한 장면은 미술관의 로비와 입구, 내부를 가리지 않고 공간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잃은 관객들은 화면 대신 인터프리터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작업의 일부가 된다. 눈부신 플래시도 요란한 셀카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티노 세갈이 말하는 ‘비물질적 예술’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티노 세갈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리움에서 전시를 구성하며 특별히 염두에 둔 지점이 있었나?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건축이었다. 리움의 구조는 매우 독특하고, 그 구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결정한다. 특히 음향적인 측면에서 이곳은 하나의 공간처럼 작동한다. 소리가 있는 작업을 하나만 두어도 그 소리가 전시장 전체로 퍼진다. 전시 공간의 중간층에 약간의 소리가 나는 조각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는 결국 그것을 치워야 했다. 소리가 나는 작업과 함께 아래층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면 두 작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3명의 인터프리터가 멈추었다가, 뛰어다니며 ‘This is so contemporary’를 외친다. 작가 이름과 제작 연도 또한 음성을 통해 발화되는 존재감이 큰 작품이다. 이 작업은 전시의 첫 장면이자 관객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다. 관객이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전부터 전시의 분위기를 감각하길 바랐다. 그래서 전시의 첫 작품을 입구에 배치했다. 전시 전체를 하나의 구성처럼 생각했다. 처음에는 경쾌하고 소리가 큰 장면으로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훨씬 차분하고 부드러운 작업들이 이어진다. 입장하면서부터 약간의 긴장감과 재미가 느껴졌다. 맞다. 그걸 의도했고,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란다.
전시 메인 공간의 구성이 흥미롭다.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조각을 놓은 공간을 나누었는데, 이러한 배치의 의도가 궁금하다. 두 공간은 성격과 사용하는 방식이 분명히 다르다. 1.5층에 위치한 조각 컬렉션은 조각이 건축의 일부로 기능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조각은 공간을 장식하거나 구조의 일부로 작동하며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소로 사용되곤 했다. 1.5층의 공간은 춤을 추기엔 조금 작았기 때문에 거기서 퍼포먼스를 하기보다는 조금 다른 성격의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인 조각들과 함께 작품을 배치했다. 결과적으로는 1층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들과 대비를 이루며 전시 안에서 또 다른 긴장을 만드는 공간이 됐다. 이 전시에선 ‘인터프리터’라 불리는 해석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관객 역시 전시에 참여한다. 내 작업에 들어오면 관객은 하나의 상황 안으로 입장하게 된다. 거기에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인터프리터들이 있고, 그들 역시 관객의 눈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조각을 볼 땐 내가 조각을 바라보고, 조각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 작업에서는 전시장 안에 실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관객을 바라볼 수 있다. 관객이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인터프리터들에게는 어떤 규칙이 있으며 그 안에서 허용되는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어떤 장면에서는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완전히 상세하게 정해진 동작이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연극에서 즉흥적으로 연기하듯이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한다. 어떤 장면의 첫 부분은 100% 안무가 정해져 있고 완전히 고정됐지만, 음악이 시작되면 그 이후의 움직임은 전적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이 그 순간 무엇을 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업은 매우 고정된 구조에서 시작해 점점 더 열린 구조로 이동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내 작업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일정한 구조나 알고리즘 같은 틀이 있고, 그 안에서 인터프리터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의 작업은 아티스트와 관객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예술은 작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떤 것을 제안하고, 관객은 그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반응한다. 이런 이중적인 관계 속에서 예술이 탄생한다.
티노 세갈 전시 현장
이번 전시에서 당신의 과거 작업들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재전시하는가? 이미지나 장면으로 작품을 기억한다. 어떤 작품들은 몇 개의 특정한 동작을 오가며 진행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다. 일례로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을 인터프리터들이 구성하는 작품이 있다. 이때 영감이 된 그림을 참고하고 동작을 확인한다. 이 동작들은 안무 같은 것이라 어떤 결정적인 지점들을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안무가 매우 세밀하게 짜였다면 이런 방식이 조금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아이디어를 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만약 가족이 우유를 사 오라고 부탁하면 그냥 기억하려고 한다. 메모를 남기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 시간이 지나며 작품의 움직임이나 내용이 변형될 수도 있지 않나? 모든 작품은 언제나 변형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 예를 들자면 암스테르담에서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작품을 누군가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변형될 가능성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관리하는 방식이 따로 존재하곤 한다.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직접 설치를 맡는 대신 이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설치를 담당한다. 이를 위한 재단이나 협회 같은 조직이 있고, 허락된 사람들만이 작품을 설치한다.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많은 작가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승인된 사람들이 작품을 조성한다. 기록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건 어느 정도 내 성격에서 비롯된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좋은 아이디어일 수 없다.” 이것은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메모하곤 하지만, 나는 그러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조금 게으른 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보다도 어떤 ‘순간의 경험’인 것인가?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상황 안에서 흐르는 일종의 에너지다. 예를 들어 전화로 이야기하거나 문자로 소통하거나 같은 공간에서 대화할 때, 우리는 같은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대면할 때는 말뿐 아니라 어떤 에너지나 감정 같은 것도 함께 전달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 더 관심이 있다. 이 전시를 보고 관객들이 무엇을 가져가면 좋을지 궁금하다. 나는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해석이 ‘정답’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작품 안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고 관객이나 비평가가 그것을 해독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같은 과정이라 하기 어렵다. 또한 그 안에 하나의 숨겨진 진짜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진실에 점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식의 구조 역시 아니다. 오히려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경험하게 만드는지,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의 작동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뭔가를 느꼈으면 좋겠지만, 그게 딱 정형화된 답은 없다. 마지막으로, 물질적이고 고도화된 사회에서 비물질적인 예술을 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자. 휴대폰은 매우 중독적인, 마치 마법 같은 장치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법적·문화적 차원에서 다양한 제도와 논의가 계속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움직임은 이어질 것이다. 나의 아들도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전화를 하는 편이 더 편리하다고 말하곤 한다. 나 역시도 기록을 남기며 소통하는 방식보다 전화처럼 직접적인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아날로그 휴대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종종 보았다. 어쩌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나타날지도…

사진

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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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o Seh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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