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ARDEN DIARY : 식물을 키운다는 것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시간. 식물과 함께 자라는 우리들의 이야기.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3.24
싱글즈 3월 호 가드닝 다이어리 이미지
독립, 그리고 식물
독립하면 식물 하나쯤은 키우고 싶어진다. 누구나 혼자 살면서 화분 하나쯤 선물 받았을 테다. 인스타그램 보면서 ‘나도 초록 정글 같은 방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고. 근데 솔직히 말해보자. 그 화분, 지금 살아 있나? 나는 부모님 집을 나오던 날 엄마한테 화분 하나를 받았다. 거실 창가에 20년 넘게 있던 그 화분. “이거라도 키워봐.” 엄마가 건넬 때 흙이 묻은 손을 닦지도 않았다. 그 손때 묻은 초록 잎들을 원룸 창틀에 올려뒀다. 잘 키워야지. 한 달 후, 잎이 노랗게 변했다. 물을 줘도 시들었다. 회사 일에 치여 며칠씩 잊었고 어느 날 보니 줄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제대로 해?”라는 말이 들릴 것 같아서. 아니, 사실은 “괜찮아, 식물은 원래 어려워”라고 말해줄 게 뻔해서 더 전화할 수 없었다. 화분을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에 뒀다. 엄마의 20년을 한 달 만에 죽인 딸. 그래도 뭔가 키우고 싶었다. 이번엔 내 돈으로, 내가 고른 걸로. 꽃집에서 제일 키우기 쉽다는 스투키를 샀다. “물도 한 달에 한 번만 주면 돼요.” 나한테 딱이었다. 책상 옆에 두고 매일 봤다. 물 주는 날을 달력에 표시했다. 이번엔 진지했다. 몇 달 후, 새잎이 나왔다. 작고 연한 초록색. 손톱만 한 크기. 내가 키운 거였다. 엄마 화분은 아니었지만, 이건 내 거였다. 퇴근하고 방문을 열 때마다 책상 위 초록이 보였다. “잘 있었어?” 중얼거렸다.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았다. 스투키 옆에 하나씩 늘었다. 몬스테라, 산세비에리아, 다시 스킨답서스. 이번엔 내가 처음부터 키우는 거. 베란다 구석의 엄마 화분은 결국 버렸다. 손이 떨렸다. 쓰레기봉투에 넣으면서 많이 속상했다. 20년 산 식물을 한 달 만에 죽인 딸. 명절에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물었다. “너 화분 잘 키우고 있어?” 엄마집 거실 창가, 텅 빈 자리를 보면서 “응, 잘 키우고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 내 방엔 초록이 7개 있으니까. 엄마 화분은 못 살렸지만, 다른 아이들은 잘 키우고 있다. 창가는 식물로 가득하고 독립이 서툴렀던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도 처음엔 그랬을 거라고, 이제 생각한다. 식물 마스터로 성장한 김지은 29세
화분은 죄가 아니잖아
헤어진 사람이 두고 간 고무나무가 거실 창가에 있다. “잘 키워보자”던 그 사람은 떠났는데 화분은 남았다. 베란다 구석으로 밀어뒀다. 물도 안 줬다. 죽으면 버리지 뭐. 근데 이 아이는 질겼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시들었지만 죽진 않았다. 볼 때마다 짜증 났다. 너도 좀 깔끔하게 정리되면 안 되냐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엄마가 집에 왔다. “이게 뭐야, 식물 학대네.” 물을 주고 갔다. 며칠 후 또 왔다. 또 물을 줬다. “엄마, 그냥 놔둬. 어차피 버릴 건데.” “버릴 거면 지금 버려. 이렇게 반쯤 죽여놓지 말고.” 엄마 말이 맞았다. 그 날 저녁, 물을 줬다. 2주에 한 번씩. 그 사람이 알려준 주기대로. 의무감이었다. 몇 달 후 새잎이 났다. 크고 선명한 초록색.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했던 그 잎. 근데 이상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 사람 생각이 났는데 아프지 않았다. 그냥 ‘잘 자랐네’ 정도. 화분을 거실로 옮겼다. 창가 햇빛 잘 드는 곳에. 잎을 닦았다. 이젠 그 사람 화분이 아니라 내 화분이었다. 물 주는 날도 내가 정했다. 놓는 위치도 내 맘대로. 친구가 물었다. “이거 전 남친 거 아니야?” “응, 근데 이젠 내 거.” 거짓말 아니었다. 1년쯤 지났을 때 창가를 봤다. 허리까지 자란 고무나무. 화분은 무성하게 자랐는데 사랑은 갔다. 이별은 정리되지 않는 게 아니라 천천히 자라나는 거였다. 그 사람 없이도 나는, 그리고 이 화분은 잘 자라고 있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최우정 29세
주말 농장으로 갑니다
2년 전 봄, 주민센터 게시판에서 본 ‘주말농장 분양’ 안내문을 보고 덜컥 신청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삶이 숨 막혀서였다. 모니터 대신 흙을 보고 싶었다. 처음엔 상추, 방울토마토, 고추모종을 심었다. 손가락만 하던 것들이 어느새 내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매주 토요일 아침, 차를 몰고 1시간을 달려가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흙을 만지는 순간, 그 귀찮음은 증발했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따 먹는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 속에 흙과 물과 햇빛과 내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가을엔 고구마를 캤다. 흙 속에서 통통한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낼 때, 옆 텃밭 아저씨가 말했다. “이 맛에 주말농장 하는 거죠.” 맞다. 귀찮음 따위는 식물이 자라는 기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3평 남짓한 작은 땅이 내 우주가 됐다. 자칭 주말 농부 김진호 35세
베란다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덜컥 화분을 샀다. 주인공 이치코처럼 텃밭을 가꾸고 싶었다. 남향 베란다에 바질, 부추, 파프리카 씨앗을 뿌렸다. 매일 물을 주고 기다렸다. 2주 후, 싹이 났다. 기뻤다. 하지만 한 달 후, 부추는 누렇게 시들었고 파프리카는 말라 죽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줬거나, 너무 적게 줬거나. 베란다를 보는 게 싫어졌다. 그래도 바질 하나는 살아 있었다. 작은 잎이 여전히 초록빛이었다. 매일 그 앞을 지나치다 문득 생각했다. ‘이 녀석만이라도 살려보자.’ 물은 흙 표면이 마르면 주고, 잡초를 정성껏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잎이 무성해졌다. 조심스레 잎을 따보니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 작았 지만, 내가 살린 거였다. 영화 속 이치코처럼 바질을 따서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렇게 베란다는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아침마다 커튼을 열고 식물들을 확인하는 것, 물을 주고 잎을 쓸어주는 것.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파프리카는 여전히 열매를 맺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것도 괜찮다. 초록빛 잎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베란다 포레스트. 거창한 이름이지만, 나에겐 그렇게 불러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타샤의 정원을 꿈꾸는 최은혜 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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