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R ART NOW : 구자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제시하는 퀴어 미술의 동시대적 좌표. 구자혜의 시선을 통해 그 스펙트럼을 탐색한다.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4.01
구자혜 언어를 도구로 무대와 전시를 넘나들며 지워진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쥐어주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여자 화장실에 전시를 연다.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 구자혜의 선택이다. 2010년 희곡 〈먼지섬〉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을 이끌며 사회적 편견과 혐오, 차별의 문제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다뤄온 창작자다. 국립극단 조연출을 거쳐 프리랜서로 작업 영역을 넓힌 그는 다큐멘터리적 형식과 자전적 서사를 교차시키며 연극의 관습과 언어를 실험해왔다. 가시화되지 못한 죽음들, 지워진 존재들, 그것이 그의 오랜 무대였다. 균열을 회피하지 않기로 한 구자혜의 작업이 아트선재에서 펼쳐진다. 세월호 이후 그는 작업 방향을 틀었다. 가해자의 언어를 해부하던 자리에서 지워진 존재들에게 언어를 건네는 쪽으 로. 언어는 도구이고 연극은 수단이다. 그래봤자 예술이지만, 그럼에도 구자혜는 지금 예술이 현실과 맞닿는 가장 불편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최근 공연은 어땠나?
〈드랙 바이 남장 신사〉는 다양한 세대의 퀴어 당사자들이 참여한 연극이었다. 60대 후반의 트랜스 여성부터 10대 부치 레즈비언, 30대 트랜스젠더까지. 지금까지 선보인 공연 가운데 관객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퀴어 프라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현실에서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무대 위에서 가감 없이 분출했다. 즐거운 얘기뿐만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이야기까지 다룬 것이 돌파구가 됐던 것 같다.
연극 작가와 연출가로 오래 활동하다 처음으로 전시장에 선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지금 안개 속에 갇힌 기분이다. 공연 예술은 리허설을 하고 그때그때 아웃풋이 나온다. 연극의 재료는 배우들의 몸과 소리니까. 근데 이건 큰 그림만 있고 전시 오픈하기 전까지는 이 그림들이 어떤 식으로 공간에서 시간성을 가지면서 관람객들과 만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처음엔 퍼포먼스로 제안받았다. 아트선재와 의논하다가 전시로 방향을 틀었다.
연극적인 면모가 있는 작품이다.
작년에 서울변방연극제에 올렸던 연극 <퇴장하는 등장>의 대본 텍스트를 가져와 만들었다. 퀴어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들이 계속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불러주고 손을 잡고 연대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다시 추방당하는. 그래서 <퇴장하는 등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상에 등장했지만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야 되고 때로는 퇴장을 종용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전시를 희곡으로 어떻게 구성했을까?
타이포그래피와 내레이션, 프로젝션 등을 활용해 좁은 공간에 텍스트들이 강박적으로 들러붙어 있다.
미술관의 여자 화장실을 전시 공간으로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전시 준비하면서 여자 화장실이란 공간이 여러 가지 의미로 와닿았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가려다가 나를 딱 쳐다 봤다. 내 머리카락이 짧아서였다. 나는 지정 성별이 여성이고, 여자 화장실을 쓰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밖에서 용변을 참아야 되는 사람들이. 이 단차를 모른 척하면서 지나갈 순 없기에 전시 직전까지 고민했다.
그 고민이 작품에 드러날까?
우리 주변엔 여자 화장실에쉽게 접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그런데 전시공간에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가정하고 전시를 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현실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고 말해줘야 한다. 균열과 갈등을 작품에 드러내야만 했다. 모순을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시장의 여자 화장실 곳곳에 노티스를 붙일 예정이다. 보통 노티스는 입구에 하나 있지 않나. 곳곳에 붙이면 의미망이 확장될 것 같다.
가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했던 연작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로 작업의 방향이 바뀐 것도 닿아 있을까?
그렇다. 초반에는 가해자 연작이라는 소위 센 작업을 했다.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라는 작품이다. 언어의 권력이 어떻게 성폭력과 위계 폭력을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가해자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에게 언어를 쥐어줬다. 한동안 가해자의 언어를 다루다 보니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만나면서 내 작업 방향이 모퉁이를 돌아섰다. 가시화되지 못하는 죽음들의 목소리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해자들에게 언어를 쥐어주는 것에서 지워진 존재들에게 언어를 쥐어주는 것으로. 현실에서 소외된 죽음이 예술에서 다뤄지는 것에 주목하게 됐다.
두 방향의 차이가 느껴지나?
후자 쪽의 작업을 할 때 조금 더 힘이 난다. 가해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자신의 대사를 계속 들어야하는 고충이 있었다. 프로덕션 안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물론 지워진 존재들한테 언어를 줘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언어가 가진 힘을 예술로서 드러낼 수 있기에 돌파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당분간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예술이 현실을 바꿀수 있다고 믿나?
예술은 지워진 존재들을 가시화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봤자 예술이긴 하지 잖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으로서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사회공헌 공익 재단 브라이언 임팩트의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활동할 자격이 있나 고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 임팩트의 활동을 통해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한 시선이 열리고 있다. 그저 개인의 작업으로만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작품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레이더를 돌려보게 된다. 덕분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좀 더 의식하게 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다. 작업의 원천은 무엇일까? 화. 깊은 분노. 혼자서 고립되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누군가와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전시가 미술 작가로서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지 살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또 작가로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할 것들을 찾아갈 생각이다. 올해 초엔 <곡비>라는 희곡집이 나왔다. 곡비는 울어주는 것을 직업으로하는 자를 뜻한다. 타인을 위해 우는 일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의미가 점점 변질돼가는 과정을 다뤘다. 이 시대에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주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희곡이다. 다가오는 6월엔 연극 〈발굴되지 않은 언어의 고통〉을 올린다. 존재하는 고통이지만 아직 언어를 획득하지 못해서 가시화되지 않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나?
비어 있고 불편한 감각.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화장실이 누군에겐 자유롭지 않은 공간임을 감각하길 바란다. 또 작품 앞에 관객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의미가 생기고, 성장했음 좋겠고.
여자 화장실에 어떤 노티스를 붙일 것인가?
이 전시를 하기 위해서 여자 화장실 하나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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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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