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 집 찾기 ① 건축가가 동사로 지은 집

자신다운 집에 산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취향을 찾는 여정을 지나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완성한 사람들의 ‘집’에 대한 고백.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4.04
노말건축사무소 소장 조세연의 집.  ⓒ 조세연
JO SE YEON 노말건축사무소 소장. 익숙한 일상의 질서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건축으로 풀어낸다.
건축가의 동사로 만든 집 다른 지역들에서 살아온 흔적을 돌아보면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 속에서 지낸 것 같다. 뉴욕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친구들처럼 아파트에 들어가는 대신 브루클린의 공장을 개조한 로프트에서 살았다. 그 집 역시 이미 만들어진 공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다시 설계하고 직접 시공하며 우리만의 집으로 바꾼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동네에 취직하게 되면서 거처를 찾아야 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빨간 벽돌집이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 나에게는 꽤 서울스러운 집처럼 느껴졌다. 망설임 없이 월세 계약을 하고 그 집에 들어갔다. 물론 결혼 후에는 잠깐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아파트의 편안함은 개인적으로 안락하다기보다는 늘어진다는 느낌에 가까웠고, 조금 따분하게 여겨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자양동의 좁은 골목이었다. 낮은 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풍경 속에 30년의 세월을 그대로 이고 선 빨간 벽돌집 하나가 눈길을 잡았다. 이 집을 고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이후의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 조세연
지금 고쳐 살고 있는 이 빨간 벽돌집은 서울에서는 흔하디흔한 구옥일지 모르지만, 해외에서 삶의 절반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는 꽤 특별한 공간이었다. 마침 막 건축가로 독립해 첫발을 디딘 시기였기에 이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을 넘어 건축을 시험해볼 수 있는 작은 실험실 같은 곳이기도 했다. 물론 월세를 아끼기 위해 집의 일부를 사무실로 함께 사용해야 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독립하며 지은 건축사무소의 이름은 ‘NOMAL’이다. 평범함을 뜻하는 NORMAL에서 R 하나를 빼고 발음만 차용한 이름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평범한 요소를 살짝 비틀어 다른 가능성을 발견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 집을 고치는 과정에도 이어졌다. 우선 골목의 풍경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비슷한 빨간벽돌집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풍경이 제법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 형태는 거의 바꾸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난간을 설치하고 단열 기준에 맞게 창호만 교체했다. 대신 내부를 새롭게 바꾸었다. 기존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아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안의 공간 사이에 작은 반전이 생기도록 했다. 하지만 겉모습보다 더 고민했던 것은 그 안에서 공간을 어떻게 쓸지였다. 면적은 고작 66㎡(20평) 남짓했지만 하고 싶은 욕심은 많았고, 무엇보다 집이면서 동시에 사무실이어야 했다. 그래서 공간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간의 ‘명사’를 지우는 것이었다. 보통의 집은 안방, 거실, 주방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이 공간의 쓰임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집이 그런 이름에 묶이지 않기를 바랐다. 대신 ‘먹기’ ‘일하기’ ‘잠자기’ ‘대화하기’ 같은 구체적인 행위들, 즉 동사들을 기준으로 공간을 생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나누다 보니 모든 방에 문을 달 필요가 없었다. 대신 벽의 재료를 다르게 써서 영역을 구분했다. 문으로 끊어버리기보다는 재료의 차이로 공간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도록 한 것이다. 좁은 집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 조세연
그렇게 구성하니 집은 자연스럽게 두 층의 성격이 나뉘었다. 도로와 맞닿아 창이 없는 1층에는 잠자기, 씻기, 옷 갈아입기 같은 행위가 들어가고, 2층은 읽고 쓰고 먹고 이야기하는 조금 더 역동적인 동사들이 충돌하는 무대가 됐다. 아침에는 큰 테이블에 도면을 펼쳐 미팅을 하거나 일을 하고, 해가 저물고 도면을 치우면 같은 자리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고 책을 읽는다.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이 된다. 1층의 휴식과 2층의 활동을 조금 더 분명하게 나누고 싶어 내부 계단도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위층으로 올라가고 밤에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집이자 사무소였던 공간에서 시간이 흘러 회사 규모가 조금 커졌고 사무실은 따로 마련하게 됐다. 일이 빠져나간 집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책장에는 건축 책과 가볍게 읽은 책이 뒤섞여 꽂혀 있고, 애지중지 키우는 식물들과 어릴 때 갖지 못했던 장난감들이 한쪽에 자리했다. 한때 방 한가운데 두었던 넓은 테이블은 이제 구석으로 밀려나 노트북과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고, 그 자리는 카펫이 깔린 채 반려견과 함께 뒹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우리 집은 점점 더 삶의 취향으로 채워지고 있다. 여행지에서 모은 자석, 친구들의 사진과 편지를 붙여놓은 냉장고, 20년 째 내려 마시는 드립 커피 도구들, 007 영화를 보고 괜히 따라 흔들어보기 시작한 마티니 셰이커 같은 것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다. 청음실처럼 특정 기능에 완벽하게 맞춘 공간도 여력만 된다면 언제든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자리를 바꾸고 쓰임을 바꾸며 살아가는 공간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특히 남의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살고 싶은 환경도 계속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이 집 역시 언젠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그때그때의 삶에 맞추어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갈 생각이다.

조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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