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 집 찾기 ③ 워키토키, 철거될 집에서 보내는 발신들

자신다운 집에 산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취향을 찾는 여정을 지나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완성한 사람들의 ‘집’에 대한 고백.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4.09
LIM NA RI 서울을 기반으로 동시대 한국 디자인을 소개하는 ‘워키토키갤러리’ 대표이자 콘텐츠 기획사 ‘워드앤뷰’ 디렉터.
워키토키, 철거될 집에서 보내는 발신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프란시스 맥도널드가 맡은 주인공 펀은 남편이 죽자 집을 버리고 밴을 타고 정처 없이 떠돈다. 걱정하는 이들에게 “난 홈리스가 아니야. 단지 하우스리스일 뿐이지. 그건 다른 거야”라고 말하는 펀. 그녀에게 ‘하우스’ 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부동산이지만, ‘홈’은 사랑하는 남편과 나눴던 생의 찬란한 순간들이 쌓인 거처였다. 그녀에게 밴은 떠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라진 ‘홈’을 위한 고유한 애도이자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15년 동안 정지해 있던 우리 동네의 재건축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을 때, 나는 펀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1981년생인 나와 동갑내기인 홍은동의 이 낡은 주택은 이제 몇 년 안에 철거될 ‘하우스’의 운명을 선고받았지만, 그럴수록 나에게 이 공간을 기억 속의 ‘홈’으로 남겨야겠다는 갈망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하우스 갤러리가 아닌, 홈 갤러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불현듯 결심했다. 거기에는 딱히 전략이나 계획은 없었다. 나는 이 집의 모든 구석과 세부, 서랍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두 아이가 학교로, 남편이 회사로 떠나고 나면 텅 빈집의 모서리를 부지런히 쓸고 닦는 건 나다. 1층 작업실에서 일하며 겨울 해의 각도가 어떻게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는지, 약간 어둑한 계단에 잘린 색종이 조각 같은 오후의 볕이 잠시 들어오는 때가 언제인지, 1층과 2층 거실 볕의 농도는 어떻게 다른지도 알고 있다. 수영복과 스키 장갑, 보온병이 어느 서랍에 있는지도 안다. 화장실에 영원히 닦이지 않는 얼룩과 벽지 구석에 적어놓은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낙서도 알고 있다. 나는 이 집의 물성을 온몸으로 낱낱이 감각하면서, 이전 주인이었던 1936년생 이봉원 선생과 1956년생 이종성 선생 가족이 이 집에 바친 사랑과 정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20여 년씩 이 집을 점유했다. 2017년 집을 구매할 당시 남편은 ‘인생 최대의 쇼핑’이라며 들떠 있었고, 나는 ‘이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겠노라’ 비장하고 낭만적인 농담을 던졌다. 정말, 관짝에 실려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서울의 재건축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부동산 가치로 따지면 이 집의 벽돌과 콘크리트는 헐고 23층짜리 아파트가 돼야 한다.
나보다 더 이 집을 샅샅이 탐험한 이들은 따로 있다.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두 아이는 집의 구조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비틀었다.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난간 사이를 넘나들고, 부엌 싱크대 위로 올라가 생경한 높이로 집과 가구를 바라보곤 했다. 집의 어디에서든 몸을 웅크릴 수 있는 작은 기지를 만들던 아이들을 보며 나는 집이란 유년기에 남는 정서적 동굴이 아닐까 싶었다. 독일의 영화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아이의 영혼을 ‘새로 쟁기질한 땅’에 비유했다. “장화를 신고 지나가면 아주 깊숙이 발자국이 남죠. 점점 성장하면서 굳어가는 거예요. 아이들의 정서는 방금 고른 땅과 같고, 장화는 딱딱하니까 깊게 파여서 아이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아요.” 집을 탐험한 경험은 우리 아이들의 부드러운 땅에 파인 공간적 흔적으로 남았다. 아이들은 이 집을 본능적 욕구를 풀어낸 해방의 장소일 뿐 아니라 상호 작용한 지도로 여길지도 모른다. 나에게 애정과 생활의 바탕이었던 이 집을 컨템 퍼러리 디자인 갤러리로 일시적으로, 임시적으로, 비정기적으로 바꾸는 행위는 소멸 예정인 이 집에 바치는 에필로그와 같다. 나는 집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존경하는 디자이너들을 전시라는 형식으로 초대했다. 기획자인 내가 할 수 있는 도모는 이 집이 철거되기 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후기와 댓글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워키토키갤러리가 탄생했다. 워키토키갤러리는 동시대 한국의 디자인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들이 작업한 가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온라인 레퍼런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모방이 아닌 창조의 타당성을 모색해보고자 누가, 무엇을, 왜 만들었는지 출처가 분명한 디자인 사물에 집중한다. 게다가 디자인 사물, 특히 가구가 결국 당도해야 할 곳은 집이 아닐까 싶었다. 집에서 디자인 행위의 결과물인 가구나 제품을 전시하는 것은 맥락에 맞아 보였다. 첫 번째 전시였던 ‘논픽션홈’의 《단어의 배열》은 문장의 최소 구성 요소인 단어를 배열하는 것처럼 가구의 배치를 통해 공간을 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이어진 ‘전산시스템’의 《하우스 오브 전산》은 가구라는 불모지에서 제작부터 배송까지 디자이너의 자아가 개입하는 ‘도어투도어(Door-to-Door)’ 브랜드를 구축해낸 과정을 통해 조립식 가구의 가능성을 제안한 전시였다. 세 번째 전시 ‘스튜디오 씨오엠’의 《소품 불러오기》는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가상 세계와 만화적 상상력 속의 기억을 사물의 형태로 소환했다. 그들이 발췌하고 인용한 사물들은 물리적인 집이 사라져도 우리 마음속의 홈을 지탱하는 기둥이 무엇인지 묻는다. 워키토키갤러리는 작품이 아닌 생활 도구로서의 가구를 중요하게 여기며, 브랜드 너머에 있는 디자이너의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다. 우리는 과거를 다져서 현재를 살며 동시에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그렇기에 동시대 속에서 시간을 견주어 차이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워키토키갤러리가 지향하는 지점이다. 워키토키갤러리는 4월에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새 전시를 공개한다. 바로 ‘사사건건’의 《가구에게 일어난 일》이다. 계약 관계에 따라 일정한 주기로 이사를 위해 옮겨 실었던 가구들이 실은 사람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디며 ‘이주’해 온 사물이었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건축과 공간이란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 장소에서든 유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가구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집이라는 안도감을 선사하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전시를 준비하며 짐을 요리조리 치우다 보면 멋진 디자인 사물 사이로 딸들이 남긴 낙서와 바닥의 낡은 스티커 자국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아이들의 영혼에 새겨진 그 깊은 발자국들이 집의 표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는 키득 웃음이 난다. 관람객 중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화이트큐브 전시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현재 진행 중인 ‘홈’이기에 가능한 이 엇나간 지점에서 같이 웃음이 터진다면 좋겠다. 이 흔적들은 타인의 집에 온 당신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 누구든, 혹시 동물이라도.
전시 〈가구에게 일어난 일〉은 4월10일부터 4월19일까지, 워키토키갤러리에서, 네이버 예약 후 관람.

사진

임나리,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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