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만든 여자들

해방은 끝난 적이 없다. 광장에서, 예술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쓰인다.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그 질문을 들고 자르디니에 선다. 찌르고, 꿰매고, 품으며.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4.27
최고은,노혜리, 최빛나
왼쪽부터_ 최고은의 아우터는 39만8천원 Moondal, 드레스는 1백19만원 Studio Nicholson, 목걸이는 70만9천원 Tom Wood,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빛나의 톱과 팬츠, 재킷은 모두 가격 미정 Agnona, 슈즈는 가격 미정 & Other Stories. 노혜리의 원피스는 가격 미정 Arket, 슈즈는 13만5천원 & Other Stories.
지난 겨울,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 눈을 맞거나, 태극기를 흔들며. 서로 다른 자리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그리고 2026년 5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열린다. 전시 제목은 《해방공간 : 요새와 둥지》. 큐레이터 최빛나, 작가 최고은과 노혜리가 지난 한 해 동안 품어온 것들이 마침내 자르디니의 작은 집에 닿는다. 놀랍게도 세 사람은 이 프로젝트 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최빛나 감독은 한국관을 갔을 때, 이 공간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와 같다고 느꼈다. 파빌리온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이곳에 ‘해방’이라는 질문을 들고 들어갔다. 그는 해방을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운동으로 바라봤고, 최고은과 노혜리가 그 질문을 그러안았다. 최고은의 신작 <메르디앙>은 한국관을 관통한다. 배관 파이프들이 한국관을 가로지르며 찌르고 파열하고, 때로는 꿰맨다. 노혜리가 선보이는 <베어링>은 그 공간 을 품에 안는다. 작가는 오간자 서클 8000개를 손바느질로 이어 붙여 이를 완성했다. 8개의 스테이션은 기억하는, 애도하는, 전망하는, 수선하는 등의 이름으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세 사람은 기자회견을 막 마치고 베니스로 떠나기 직전, 〈싱글즈〉와 마주 앉았다. 1970 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합기도장이 운영되던 효자아파트의 한 공간, 최빛나 감독과 연구자들이 공동 운영하는 ‘합(合)’에서였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호흡을 맞추는 자리엔 달뜬 공기가 감돌았다.
NOH HYE RI 이민과 이주, 가족을 둘러싼 자전적 서사를 손으로 빚고 변형한 사물과 공간으로 풀어낸다. 노혜리는 국경 정치와 자본주의적 경제 구조 속에서 가족과 세대, 동료 사이의 내밀한 관계가 어떻게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어떤 계기로 협업하게 됐나? 최고은 보통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와 작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많다.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로 처음 만났는데, 어쩌면 리스크가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걸 결정해서 끌고 나간 것도 감독님의 힘이다. 최빛나 하늘이 점지한 것 같았다. 하하. 최고은 작가 작업은 2024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봤다. 당시에 봤던 최고의 작품이었다. 강렬하면서, 운동성을 가지고 있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었다. 이런 작품에 맞설 수 있는 작가를 찾았다. 팽팽하게 겨룰 수 있는, 강도와 완성도가 대등한 사람. 여러 작품을 찾아보다가 불쑥 노혜리 작가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하고 봤더니 이 사람인 거다. 바로 전화했다. 노혜리 우리 셋의 공통점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타협하지 않고 납득할 수있을 때까지 시도하는 이들이 모이게 됐다는 게 든든했다. 한국관 위치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고. 최빛나 지난 6월 전시가 결정되고 답사를 가보니 한국관의 위치가 비가시적으로 느껴졌다.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를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집. 이 나라가 만들어지게 된 어떤 역사적 길과 닮았다. 한국관은 1995년에 설립됐는데, 그해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광주비엔날레가 출범했다. 탈식민의 전환이 일어난 해에 한국관이 생긴 거다. 2024년 겨울 이후 한국의 상황도 그 연장선이었다. 계엄, 탄핵, 광장까지. 해방은 완결된 사건이 아니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운동이다. 또 이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하와이처럼 여전히 점령의 현재를 살아가는 곳들이 있다. 지금 ‘해방’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해방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와닿았을까? 최고은 처음엔 어렵고 생소했다. 감독님이 이번 전시에 왜 우리를 선택하셨는지, 해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견을 주고받던 중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이상, 각자의 답이 있어야 한다”는 감독님 말씀이 와닿았다. 자유이자 책임으로. 지난 10년간 작가로서 활동해 왔고, 이제 마흔이 됐다. ‘어떤 작업이 진짜 내 작업인가’에 대해 생각하던 중 마주한 주제였다. 적절한 시기에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노혜리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아주 오래전 기억들까지 소환됐다. 언젠가 만날 수밖에 없는, 만나야 할 운명과도 같은 주제였던 것 같다. 원래 작업을 할 때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적인 내러티브에서 출발하는데, 이번엔 그게 더 넓게, 시간을 초월해서 연결됐다. 심지어 중학교 때 생각했던 것들까지 불러일으켜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가족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애를 낳아 볼까라는 마음도 들었다. 죽음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우연히 ‘to beara child(아이를 낳다)’라는 문구를 마주했는데 무게를 견디고 지탱하며, 방향을 바꾸고,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베어링(Bearing)이라는 기계 부품이 떠올랐다. 작은 요소가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장치고, 그게 운동으로서의 해방 공간과 이어진다고 느꼈다.
CHOI GO EUN 주된 매체인 동 파이프를 쪼개고 자르고 굽혀 장소 특정적 조각을 구현한다. 최고은은 건축 공간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며 그 안에 내재된 에너지를 읽어낸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정지된 듯 보이지만 움직임을 품고 있는 것들에 주목한다.
<베어링>이 새 둥지와 닮았다고 했다. 노혜리 한국관 내부를 보호막처럼 안아주는 설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관 건물을 가봤을 때 처음부터 떠올랐던 전략적인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데, 모두가 다 유리로 돼 오픈된 느낌이라 좋았다. 내 작업은 굉장히 작고 다치기 쉬운 형태가 많다. <베어링>은 오간자에 손으로 왁스를 하나씩 입혀서 손바느질로 서로 꿰맨 작업이다. 연약하지만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끈질기다. 그게 새 둥지와도 닮았다. 이를 처음엔 한국관 전체를 두르려고 했다. 건물 자체가 아예 ‘베어링’이 되도록.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전시장을 걸으며 쇠공처럼 움직임을 만들어내게 되고, 내부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확산할 수 있겠다는 개념이었다. 결과적으로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통해 스테이션이라고 부르는 8개의 조각을 제작했고 각각에 이름을 붙였다. ‘기억하는’ 스테이션, ‘애도하는’ 스테이션 같은 식이다. 내가 살아내고 싶은 모습, 자녀가 생긴다면 알려주고 싶은 삶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동 파이프가 한국관 전체를 관통한다. 최고은 이번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장소 반응적인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메르디앙>은 동파이프를 가르고, 휘어 한국관 건물 내외부를 관통하는 방식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물론 무시할 수 없던 강력한 베니스라는 장소성! 그리고 기후에 반응하고, 마주하면서 해야 하는 작업이다. 파이프 작품과 건물을 같이 바라볼 수밖에 없게 설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지리학에서는 ‘메르디앙’이 자오선이다. 씨앗, 아기, 탄생을 의미하는 ‘자(子)’와 정점을 뜻하는 ‘오(午)’가 함께 있는 단어다. ‘시작 과 정점’이란 개념은 내 작품과 혜리 작가 작품이 함께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감독님이랑 초반에 한국의 ‘침술’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어쩌면 이번 작업은 한국관에 막힌 혈을 뚫는 것처럼 파이프를 설치한다. 파이프를 바늘이라고 여기면 무언가를 연결하는 선이 될 수 있다. 꿰매고 연결하는 것들. 사실 침을 맞으면 아프지 않나. 그런데 회복이 된다. 또 ‘관통’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관통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관통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핵심을. 최빛나 파이프가 한국관을 통과하면서, 관객이 건축물 안팎에서 작품을 함께 바라보도록 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노혜리 작가의 작품 <베어링>을 들여다보다 보면, 또 <메르디앙>의 파이프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일 거다.
CHOI BINNA 큐레이터이자 연구자. 예술과 공동체의 지평을 탈식민·탈근대적 시각으로 탐구하며 큐레토리얼 실천을 이어왔다.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아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기획했다.
그 안에 한강 작가의 작업도 깃든다. 최빛나 한강 작가님에게 글을 부탁했더니 다양한 작품을 전해왔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주면 좋을지 막혀있다가 혜리 작가님이 애도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전 말이 되는 거였다. 노혜리 한강 작가님의 설치 작품<더 퓨너럴>이 애도하는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관객들이 어떻게 이 공간을 경험했으면 하나? 최빛나 돌아버려. 계속 돌아버려. 영원히. 한국관을 돌면서 전시를 보는 형태이기도 하고, 뭔가 너무 좋으면 눈물이 핑 도는 느낌도 있지 않나. 그 경험에 머무르고 싶은. 그렇게 함으로써 실천을 위한 어떤 경지가 생긴다고 본다. 옛날에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첨성대에 오른 학생들처럼. 몸으로 해방 공간 기념비를 즐겨주면 좋겠다. 최고은 이완된 마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더 많은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이 전시의 하나의 관객이니 같은 마음이고. 노혜리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 베니스비엔날레에 굉장히 많은 전시가 열리는데 조금 다른 호흡으로 한숨을 좀 고를 수 있는, 탑돌이처럼 무언가를 염원하며 공간을 좀 계속해서 도는 그런 감각이 분명히 내재한 전시다. 애도하는 마음, 기억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길 바란다. 이미 말로 할 수 있는 걸 미술로 해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 2026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및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사진

이우정

헤어

장하준

메이크업

박수연

스타일리스트

심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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