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UN) KNOWN GIRL, 이현하라는 스타일
패션 인플루언서, 모델, K-팝 스타일리스트로서 자신만의 새로운 코드를 써 내려가는 ‘이현하’라는 아이콘에 대하여.
BY 에디터 최윤정 (프리랜서) | 2026.05.12코드(Code)를 설계하던 정교한 손길로 아티스트의 오라를 스타일링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모델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현하. 최근에는 아일릿의 다양한 비주얼을 책임지며 패션계의 키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자신의 내적 욕망을 투영한 반항적인 믹스매치로 기존의 스타일링 공식을 깨부수는 그녀는 장르의 경계 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 중이다. 그녀의 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하긴 어렵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모두가 ‘이현하 스타일’을 찾고 있다는 사실!

<싱글즈>와는 이미 모델로 한 번 만난 적 있다.
2023년 12월호 크리스마스 화보였다. 이번엔 모델이 아닌 ‘나’로 만나는 것이라 긴장이 된다. 오늘 우리가 만난 자리도 내가 실제로 스타일링 작업을 하고 있는 사무실이고. 이런 누추한 곳에 초대해도 될까 싶었다. 하하. 그래서 오랜만에 청소도 하고, 가구도 좀 채웠다.
무척 바쁘다고 들었다.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노트북을 켜고 시안 작업을 한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사무실에 갔다가 작업이 길어지면 새벽에 아버지 차를 타고 퇴근하는 루틴이다.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아일릿의 4월 말 컴백 앨범.
아일릿과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지난해 9월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협업이 진행됐다. 물론 전부터 지켜보던 아티스트였고. TMI를 풀자면 쇼핑하려고 위시 리스트에 담아둔 상품마다 품절이 됐는데 나중에 보면 아일릿이 착용하고 있더라. 나랑 취향이 통하는 아티스트구나,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던 차에 공식적으로 미팅 제안을 받았다. 정식으로 스타일링을 한 건 처음이라 나로선 큰 도전이었다.
첫 작업은 무엇인가?
싱글 1집 ‘NOT CUTE ANYMORE’의 수록곡 콘셉트 포토와 퍼포먼스 필름. 이후 2025 가요대전 시상식과 일본 두 번째 디지털 싱글 ‘Sunday Moring’ 콘셉트 포토 & 뮤직비디오, ‘NOT ME’ 뮤직비디오 등에 참여했다. 4월 30일에 공개될 미니 4집도 기대해달라.
이현하표 스타일링에 특히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아이돌 그룹 스타일링을 보면 일종의 공식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신장이 큰 멤버의 의상은 포인트를 덜어내는 식이다.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한쪽으로 집중되지 않게 조율하는 듯하다. 내 경우는 좀 다르다. 어떨 땐 ‘내가 저 얼굴이면 이렇게 입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나의 팔로어들의 표현에 따르면 “언니(이현하) 냄새가 난다”고. 하하. 내적 욕망을 투영한 티가 나는 것 같다. 또한 아티스트에게 어울릴 것 같으면 조금 생소한 브랜드일지라도 적극적으로 가져온다.
브랜드의 명성보다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궁합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네임 밸류는 중요하지 않다. 아일릿이 이전에 자주 착용했던 브랜드를 답습하지도 않는다. 유명한지보다는 얼마나 귀여운지(웃음), 그래서 아일릿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본인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듯하다. 경량 패딩에 튀튀 스커트처럼 언밸런스한 조합과 믹스매치 같은 것.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정식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니까, 내 방식대로 할 수밖에. 남들이 입은 걸 보고 이뻐서 시도해보면 나에게는 ‘그닥’이었다. 그래서 다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 조금 더 비뚤게 입었을 때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스타일링을 할 때 ‘이것만은 꼭 지킨다’는 규칙이 있을까?
항상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하는포인트를 넣으려고 한다. 그리고 하나의 룩 안에 꼭 세 개 이상의 컬러를 쓰는 편이다. 남 말고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금발도 하나의 색으로 치고 여기에 두 가지 이상의 컬러를 추가한다. 블랙은 좀 피하는 편이다. 블랙이 누군가에겐 기본 색상이겠지만 내 경우엔 네이비보다 더 튀는 색이기 때문이다.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때는 IT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KT 그룹사를 다녔다. KT 영업 전산과 금융 차세대 시스템 SI/SM 개발을 다뤘다.
원래 전공이 그쪽인가?
취직 전에는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회사에 바로 취직할 수 있는 3년의 커리큘럼을 소화했고, 이때 소프트웨어 개발 수업을 받았다.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수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IT 개발자에서 모델, 인플루언서… 이 같은 변화가 흔한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개발자 일로 수익을 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자’ 는 생각으로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이게 다른 사람들에겐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패션 업계의 유명인들로부터 일명 ‘샷 아웃’을 받았고, 이걸 계기로 다양한 브랜드의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진로를 전환한 건 아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 조용히 개발자 일을 병행하는 게 ‘남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온 듯하다.
진로를 전환할 때 어떤 고민을 했나?
자연스럽게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온 상황이었고, 운 좋게 값진 기회를 얻은 만큼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기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니까. 다만 부모님을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패션 일을 시작하기까지 딱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유튜버로도 활동 중이다. IT 업계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던가?
꼭 그렇지는 않다. 편집 툴을 배운 정도이지 내가 전문적인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친구가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유튜브의 패션 콘텐츠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를 보면 취향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여행을 자주 가는데 새로운 도시에서 영향을 받는 편이다. 금발로 염색하면서 헤어 컬러에 맞춰 내 취향이 변하기도 하고. 하하. 또 가깝게 만나는 이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전염된 까닭도 있다.
예를 들자면?
최근 뉴욕에서 알게 된 ‘콜린’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사람은 플랫 화이트를 좋아하는데, 그럼 난 이 식성까지 따라 해본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일까? 본분에 다시 집중하면, 캐피탈(Kapital)의 후드 집업이나 머플러, 폴 하든(Paul Harnden)의 가방처럼 내가 평소 시도해본 적 없는 브랜드나 제품이 나타난다면 이건 다 새로운 인연으로부터 비롯된 거라고 보면 된다.
최근 애정을 갖게 된 브랜드는?
프라다와 드리스 반 노튼, 그리고 르메르.
당신의 유튜브를 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에디슨 송과 오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더라.
비디오그래퍼 DQM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됐다. 이후 칠코모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된 것도 모두 그녀의 제안 덕이다.
모델 쿠루미, 인플루언서 묵화처럼 주변 친구들을 스타일링하는 콘텐츠도 재미있게 봤다. 타인을 꾸밀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들을 가지고 옷걸이가 좋은 사람들과 인형 놀이를 하는 거다. 그리고 지인들을 스타일링할 때는 지금처럼 전문적인 스킬이 있던 게 아니라 더 쉽게 접근했던 것 같다.
큐리어스 도쿄나 카오리노모리의 브랜드 작업부터 <긴자>와 <시티 매거진> 등 일본 매체에 소개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 스케줄이 많다. 그걸 보고 촬영을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매거진 인터뷰도 진행하게 되고. 원격 인터뷰라 옷장 사진을 직접 찍어 보내야 했는데 욕심이 생겨 없던 원목 옷장까지 구입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전에 가구 사는 버릇이 그때부터 시작됐네.(웃음)
요즘엔 수잔팡, 위민처럼 상하이 베이스의 브랜드와도 접점이 생긴 것 같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사실 수잔팡을 처음 알았을 땐 영국 브랜드라 생각했다. 상하이가 유명해져서 그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단 내 취향이 묻어난 뭔가를 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점이 생긴 것 같다. 아, 큐리어스 도쿄의 디렉터인 나오는 디자이너 수잔과 친구다. 셋이 도쿄에서 조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잔에게 팬심을 표하긴 했다. 여행을 좋아해 상하이에 자주 방문하기도 했고, 브랜드 대행사 역할을 하던 친구와 연이 닿으면서 위민의 신제품을 입고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이현하스러운’ 브랜드들이 알아서 모여드는 것 같다.
그런가? 하하. 아무튼 스타일링을 하고 있는 지금은 상하이 브랜드와의 인연이 많은 도움을 준다. 이미 소통을 했던 브랜드다 보니 아티스트 협찬도 매끄럽게 진행되는 편이다. 최근 공개된 아일릿의 콘셉트 포토 촬영에도 위민 제품을 사용했다.
케이크 계정은 이현하의 또 다른 캐릭터 공간이다. 당신의 자필 낙서도 콘텐츠에 고유성을 더한다. 직접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도 있나?
어떤 방식이든 내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환영한다. 하지만 브랜드를 론칭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브랜드는 ‘지속성’이 중요하고, 소비자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나는 내 취향이 담긴 무언가가 세상에 나오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평생 ‘사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파는’ 사람은 못 될 것 같다.
평생 표현하고 싶을 뿐, 이를 ‘상품화’하고 싶진 않다고 이해하면 될까?
케이크도, 낙서도 흔히들 말하는 ‘부캐’의 놀이 정도로만 봐주면 좋겠다.
그럼 앞으로 생성될 또 다른 부캐는?
나비 표본을 만드는 사람? 나비를 좋아한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
어떤 영감을 ‘스타일링’ 이라는 결과로 도출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살면서 내 것이 된’ 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표출되는 것 같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엄마. 패션 감각이 정말 좋은데, 추구하는 스타일이 확고하고 내게도 항상 냉정한 조언을 건넨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백그라운드를 좀 따라가는 편이다. 그 사람이 입는 옷은 물론 듣는 음악이나 마시는 커피까지도.
최근 체감하는 대표적인 패션 트렌드, 주된 흐름이 있다면?
요즘은 절대다수에게 통용되는 일반적인 멋이나 일정 기간 유지되는 트렌드가 없는 것 같다. 패션뿐 아니라 개인의 서사 속에서 중요한 가치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 트렌드’라는 기사를 보면 오히려 ‘이게 정말 트렌드일까?’ 의문이 생긴다. 예전에는 ‘내가 입는 게 곧 트렌드’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며 내가 맡은 역할에 따라, 또 그 역할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접근하는 스타일도 천차만별이 되고 있다.
당신의 서사 속에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지나간 일은 되새기지 않는 편이다. 지금이야말로 잊지 못할 순간 아닐까? 서울 한복판에 개인 사무실이 생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졌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안 해봤다.
지금의 ‘이현하’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면 좋을까?
항상 그게 어렵다. 요즘은 ‘스타일리스트’라 말하고는 있다. 나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미래로 시점을 바꿔보자. 미래의 이현하는 어떤 모습일까?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뭐든 욕망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 욕망을 묵묵히 이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
김재훈
스트리트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스타일링 팁
이현하
아이돌 스타일링
스타일리스트 인터뷰
K팝 스타일링
2026 패션 트렌드
패션 인플루언서
아일릿 스타일링
패션 인플루언서 스타일
믹스매치 코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