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T & FRESH SWEAT : 트레일 러닝

땀 냄새와 진흙탕 사이 우리는 왜 굳이 힘든 걸 선택하는가.
BY 에디터 김초혜 | 2026.05.14
 트레일러닝 이미지
까마득한 산길을 뛰고 난 후에 아는 것. 트레일러닝으로 배우는 새로운 세계.
산을 달리는 사람들
writer 윤성중 고등학교 산악부를 거쳐 대학교 때도 산악부 생활을 했다. 졸업 후 산 타는 것 외에 딱히 잘하는 게 없어 등산 잡지사에 입사, 한국의 3대 등산 잡지사에서 모두 근무하는 기록을 세웠다. 책 <등산 시렁>을 냈다.
트레일러닝은 산에서 달리는 종목이다. “걷기도 힘든데, 산에서 달린다고?” 대부분 이런 반응이다. 그 반응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안 해봐서 믿기지 않을뿐이에요.” 산에서 달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대회도 연다. 일명 트레일러닝 대회라고 한다. 프랑스 몽블랑 산을 한바퀴 도는 UTMB 대회가 유명하다. 한국에선 제주국제트레일러닝 대회, 장수트레일레이스, TNF100, 운탄고도 레이스 등이 꽤 알려져 있다. 산에서 적게는 20km, 많게는 160km를 달리는 행사다. 지난해에만 이런 대회가 60여 개 열렸다. 몇 해 전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규모가 커졌다. 얼마 전엔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산에서 단체로 모여 뛰는 것을 금지했다. 일반 등산객 다수가 민원을 넣은 것 같다. “산에서 뛰는 사람들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라고. 이 같은 제지는 처음이다. 트레일러닝이 인기가 많아졌다는 뜻이겠다. 트레일러닝이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게된 것은 ‘코로나’ 때였다. 당시 마라톤 경기는 죄다 취소됐고, 강변에선 함부로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달리기를 하고 싶은 사람 중 많은 수가 산에 갔다. 그들은 산에서 달렸다. 산에선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최근엔 좀 다른 양상이다.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달리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요즘 마라톤대회 참가 신청이 꽤 어려워졌는데, 접수 날 ‘광클’을 했어도 결국 실패한 사람들 몇몇은 포기하고 트레일러닝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산 쪽엔 아직 자리가 널널하다. 하지만 일반 마라톤에 비해 진입 장벽이 있는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르막 때문이라고 여긴다. 지금 트레일러너라고 불리는 이들은 오르막 공포증에 웬만큼 적응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떻게 적응했는지 궁금한가? 공포의 진입 장벽을 넘으면 뭐가 보일지 궁금한가? 대략 설명해보겠다. 어느 봄날, 트레일러닝 대회 취재를 갔다. 이 대회에 나도 참가했다. 50km 부문이었다. 처음은 아니어서 비교적 여유로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전과 다르게 인터뷰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골인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건 지겨웠다.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즐기면서 하세요!”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갔다가 기권한 사람들의 사연은 어떨까? 기권하려면 왜 대회에 나왔을까? 기권한 직후 기분은 어떨까? 궁금한 게 많았다. 결국 꼭지 제목을 ‘DNF(Did Not Finish)한 사람들’이라고 정한 채 경기에 뛰어들었고, 나는 산길을 달리다가 도중에 포기한 채 주저 앉아 넋이 나간 사람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그중 나에게 특별한 궁금증을 안긴 참가자를 만났다. 그는 장거리 트레일러너로서 이전까지 수차례 산에서 1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왜 장거리 트레일 러닝에 계속 나가죠?” 그가 대답했다. “산에 더 오래 있고 싶어서요.” 나는 이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일까? 정말로 산에 더 오래 있고 싶을까? 대체 왜? 2년 후 나는 또 다른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갔다. 이번엔 거리가 더 길었다. 70km 부문이었다. 산에 오래 다녔지만 이처럼 먼 거리를 하루 만에 이동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다른 때와 달리 긴장한 채 경기에 참가했다. 대회 중반에 이르러 비가 내렸다. 땅이 질퍽질퍽해졌다. 내리막길은 그래서 미끄러웠다. 어떤 사람은 추위에 벌벌 떨면서 구급차에 실려 갔다. 나는 괜찮았다. 방수가 되는 비옷을 입고 있었고, 이전부터 훈련을 꽤 많이 한 상태라 다리에 쥐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도중에 경기가 중단됐다. 비가 많이 내린 탓이다. 비 때문에 꽤 많은 사람이 산에서 내려갔고, 그중 상당수는 구급차를 탔다. 속도가 느렸지만 멀쩡했던 나는 약간 아쉬워하면서 산에서 걸어 내려갔다. 완주하지 못했지만 만족감이 컸다. 이전보다 체력이 좋아졌다는 걸 확인했다. 경기가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내 생애 가장 좋은 성적으로 골인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만족감으로 기쁜 와중에 2년 전 인터뷰한 사람이 떠올랐다. 경기에 기권했으면서도 산에 더 오래 있고 싶다고 말한사람. 나는 그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엄밀히 따지면 산은 사람이 단 하루도 맘 편히 있을 수 없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산에는 사람이 먹을 게 없다. 약초꾼이 아니라면 산에서 먹을거라곤 계곡물뿐이다. 또 때때로 춥고, 벌레가 성가시다. 이상한 소리 때문에 밤에는 무섭기도 하고 대체로 축축하다. 기분 나쁘다. 그는 그런 산에 왜 더 오래 있고 싶었을까? 며칠이 지난 뒤 비로소 그 대답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날, 산에는 비가 내릴 뿐 아니라 바람도 많이 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산길을 올랐다. 진흙탕에서 구르기도 했다. 그것이 고통스러웠다고 기억되지 않았다. 당시 산에서 풍기는 온갖 냄새를 흠뻑 뒤집어쓴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무 냄새, 흙냄새, 바람 소리, 새소리, 땀 냄새, 발냄새, 콧물 냄새, 눈물 냄새 등 온몸을 끈적이게 하는 그 분위기가 자꾸 생각났다. 보송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대회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을 때 그 자극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그가 말한 산에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바람은 혹시 원초적인 것에 가깝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 흙을 만지고 싶다! 나무껍질에 부비고 싶다! 마음껏 땀을 흘리고 싶다! 지금보다 끈적이고 싶다! 뭐, 그런 것. 끈적이는 것보다 쾌적한 게 낫긴 하다. 사람 누구나 쾌적한 걸 더 선호한다. 그러니까 ‘찝찝하고 끈적이는 건 싫지만 그래도 그때가 자꾸 떠올라!’라는 기분을 짧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면 ‘산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라는 문장이 된다고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마침내 올무를 벗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에게 SNS로 편지를 썼다. 그는 내가 느낀 것이 대충 맞다는 분위기의 답장을 보내왔다. 산에서 지독한 냄새에 둘러싸인 채 처절한 상황을 겪는 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예시를 더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듬해 나는 100km 대회에 도전장을 또 냈다. 훈련을 열심히 했다. 고도 500m가 넘는 뒷산을 한 달에 스무 번 정도 오르내렸다. 그러고선 경기에 나갔다. 하지만 도중에 발목을 심하게 접질려 기권했다. 또! 나는 경기장으로 일찍 들어와 골인하는 선수들을 지켜봤다. 선수들은 24시간 혹은 30시간 동안 산에서 달린 상태였다. 여기서 나는 같이 출전한 후배를 기다렸다. 한참 후 골인 지점에 나타난 후배의 눈빛은 풀려 있었다. 초점이 맞지않고 멍한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쉽게 말해 정신이 나가 보였다. 당시 그는 다시는 이런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땐 또 달라져 있었다. 그가 소감을 말했다. “당연히 기뻐요. 음, 어떻게 비교하면 좋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험 생활이 너무 싫었어요. 지긋지긋해서 재수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죠. 딱 한 번에 이걸 끝내고 싶다고 다짐했어요. 말하자면 이번 경기는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인생의 큰 고민거리 하나를 덜어낸 느낌이라고 할까요? 성취감이 굉장히 컸죠.” 100km 이상 장거리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가겠다고 결심하기 위해선 ‘명분’이 있어야 한다. 훈련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그 기간 또한 꽤 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불편함을 견딘 끝에 산에서 마주하는 건 끔찍한 기분이 거의 대부분이다. 분명히 이걸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그것은 100km를 달릴 때 겪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경험하고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험난하고 때론 위험한 장거리 경주에 왜 참여할까라는 의문에 내가 직접 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배는 대체 왜 100km 경주에 나서게 됐을까? “이직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어요. 어딘가에 몰두하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고요. 그것말고 특별한 명분은 없어요. 따져보면 이 경기에 참여하고 완주하는 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꼭 해야 하거나 필요한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업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제 자식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빠의 업적 중 하나 정도인데, 그거 하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후배를 비롯해 장거리 주자들은 대회 마지막 날진흙투성이가 된 채 결승점을 통과했다. 처절해 보였고, 내 눈에 그들은 처절한 상황을 이기고 돌아온 전사 혹은 영웅처럼 보였다. 그것은 끔찍한 정글 같은 삶 속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사람의 모습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감동적이었고 멋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기까지 했다. 나는 저 처절한 이미지를 획득하고 싶었다. 그것이 목에 거는 메달이나 ‘100K Finisher’라고 적힌 기념 티셔츠를 얻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아무리 고되고 힘든 일을 겪어도 칭찬받거나 인정 받는 건 꽤 어렵다. 왜냐하면 겉모습이 멀쩡하니까. 도시에서 우리는 대체로 잘 차려입는 편이고,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지 않는다. 누가 얼마큼 고된 하루를 보냈는지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반면 산에서 달리면 자연스러운 처절함을 연출할 수 있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얼굴을 찡그리고 골인 지점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안 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험난한 경험을 무리 없이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에 트레일러닝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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