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PLETELY KOREA! : 파리에서 다시 읽는 K-뷰티

18세기 미인도부터 블랙핑크까지. 지금 파리에서는 ‘K-뷰티’ 전시가 한창이다.
BY 에디터 박은아 (프리랜서) | 2026.05.26
글로벌 뷰티 시장의 중심 프랑스에서 만나는 K-뷰티. 소위 ‘백화점 화장품’으로 통하는 뷰티 브랜드의 본고장 파리에서는 지금 《K-뷰티. 한국의 미, 그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전시가 한창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기메 박물관(Musée Guimet)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18세기 규방의 미인도부터 화협옹주의 화장 상자, 한복과 달항아리, 경성 시대의 신여성과 블랙핑크를 하나의 계보로 연결함으로써 글로벌 뷰티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한국 ‘뷰티’의 기원을 추적한다. 보물처럼 전시된 역사적인 물건 중엔 ‘박가분’이라는 글씨가 적힌 분첩함도 있다.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이 제공한 이 박가분은 1920~193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다. 매년 역대 수출 기록을 경신 중인 K-뷰티 열풍이 정확히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엄마의 화장대다.
워킹 맘과 K-뷰티
1990년대 초등학생 시절, 방판 이모가 다녀간 날이면 엄마의 화장대에는 설화수 윤조에센스, 헤라 비누 같은 신상품이 놓였다. 덤으로 챙겨준 샘플도 한가득. 그 샘플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목욕탕 바구니에 담겨 나름의 품격을 발휘했다. 엄마의 샘플이 목욕탕에 뿌려지는 날이면 동네 이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뷰티 품평회를 열었다. 고급스러운 꽃 향기가 나는 이 작은 화장품들은 워킹 맘으로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던 엄마 자신을 위한 선물이자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메이크업도 상당히 셌다. 갈매기 눈썹에 고동색에 가까운 입술. 지금도 가족사진에는 한껏 멋을 낸 엄마의 모습이 남아있다. 아마 김혜수와 이승연 같은 당대 여배우들의 과감하고 섹시한 모습을 따라한 것이리라. 지금 생각하면 그 입술이야말로 엄마에게 야망과 패기를 심어준 일종의 선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메이크업 트렌드는 브라운관에서 시작해 안방으로, 거리로, 가족사진 속으로 스며들었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엔 ‘트윈 케이크’가 유행했다. 오늘날의 쿠션이 세상에 나오기 전, 굳건한 화장품 카테고리로 군림하던 그 이름. 촘촘히 쌓아 올린 분을 보드랍고 이국적인 케이크에 비유한 작명은 사랑스럽고 기발하다. 촉촉한 이름과 달리 매트한 재질 탓에 트윈 케이크를 쓰기 전엔 피부를 촉촉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수였지만, 화장법을 몰랐던 난 그냥 마구 발랐다. 그리고 얼굴과 목의 경계를 선명하게 남긴 채로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2000년대 이후 흐름은 또 바뀌었다. 화려함 대신 투명하고 맑은 피부 표현을 강조하는 내추럴 메이크업이 주류가 됐고, 자외선 차단제와 더마코즈메틱 같은 기능성 화장품이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뷰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비례해 소비 시장도 커졌다. 소비자의 눈높이가 올라갈수록 제품의 성분과 효능은 정교해졌고, 시대에 따라 화장의 문법 또한 계속 달라졌다. 어쩌면 이토록 다채로운 변화와 경험이 한국을 세계가 인정하는 뷰티 강국으로 밀어 올린 힘일 것이다. 물론 엄마의 화장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것도 하나 있다. 그건 더 예뻐지고 싶다는 순전한 열망이다.
미인도에서 블랙핑크로
기메 박물관의 《K-뷰티. 한국의 미, 그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K-뷰티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시대적 현상으로서 그 흐름을 연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영국 V&A 등이 참여했으며, 특히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은 백자청화 화장 용기, 경대, <동의 보감>, 장신구 등 가장 많은 소장품을 선보인다. 전시의 첫 섹션은 신윤복의 <미인도>다. 앵두처럼 붉고 작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 쌍꺼풀 없이 가느다란 눈. 본래의 생김새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름답게 가꾸던 그 절제된 미의식은 지금의 클린 뷰티와도 맥이 닿아 있다. 또한 한영수 사진가의 1958년작 <명동>은 구시대적 가치에 균열을 일으키는 당당한 신여성의 모습을 포착한다. 서울 올림픽 이후 확산된 대중문화의 소프트 파워, 세계적인 뷰티 아이콘이 된 K-팝 스타들… . 오늘날의 K-뷰티 브랜드와 270여 년 전의 화장 도구를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미의 기준이 실은 훨씬 깊은 시간과 섬세한 미감 위에 구축됐음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의 역사는 한 사회의 구조와 감각, 권력과 욕망의 흐름을 반영해왔다. 아름다운 얼굴을 뜻하는 ‘미용(美容)’이라는 낱말과 연결되는 장소, 물건들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가 깃들어 있다. 조선 시대 여염집 여인들이 쌀뜨물로 얼굴을 닦던 것처럼, 1990년대 워킹 맘이 갈색 입술을 그리던 것처럼, 지금의 Z세대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신상 제품으로 유리피부를 가꾼다. 트윈 케이크를 덕지덕지 바르고 스티커 사진을 찍던 중학생 소녀는 이제 10년 차 뷰티 에디터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의 뷰티 산업은 고도화되고 시장은 놀라울 만큼 커졌다. 숱한 사람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의 뿌리를 찬찬히 관찰해볼 시간이다. 이번 전시는 7월 6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Dmitry Kostyukov

K뷰티
파리 전시
K뷰티 전시
한국 뷰티 역사
프랑스 K뷰티
한국 미의식
글로벌 뷰티 시장
한국 화장 문화
뷰티 트렌드 역사
K뷰티 현상
0
SINGLES OFFICIAL YOUTUBESINGLES OFFICIAL YOUTUBE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