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페스티벌, ROUND 2026
매년 봄, 사막에서 날아오는 숏츠를 스크롤하며 아쉬웠다면 이 이름을 기억해둘 만하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음악 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다채로운 매력을 담아내는 뮤직 페스티벌, ‘2026 ROUND in the Philippines’의 뜨거운 기록.
BY 에디터 오유리 (프리랜서) | 2026.05.27
2026년 4월 18일 필리핀 마닐라의 ‘아라네타 콜로세움(Araneta Coliseum)’. 무하마드 알리와 조프레이저의 역사적인 헤비급 타이틀 매치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어린 마이클 잭슨이 함께한 ‘잭슨 5’의 투어 ‘Love Jive’의 마지막 공연이 열렸던 곳. 스포츠와 종교와 음악의 전설적 모먼트가 켜켜이 중첩된 이곳에서 한·아세안 뮤직 페스티벌 ‘2026 ROUND in the Philippines(이하 라운드 페스티벌)’의 막이 올랐다.
이틀간 이어지는 음악 축제의 화려한 서막은 K-팝의 열렬한 팬이었다가 마침내 무대의 주인공이 된 필리핀 아티스트들이 장식했다. 호라이즌(HORI7ON), 카이아(KAIA), 퍼스트원(1ST ONE) 등 필리핀을 대표하는 P-팝 그룹 세 팀, 무려 열일곱 명의 멤버가 함께 꾸민 오프닝 무대는 K-팝 시스템을 흡수해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한 필리핀 음악 산업의 현재를 선명하게 증명하며 수천 명의 다국적 관객을 단숨에 열광시켰다. 동남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생동하는 아세안 음악 신의 폭발적 에너지를 담아내는 용광로, 이것이 바로 ‘라운드(ROUND)’다.
라운드는 한국과 아세안 간의 문화 교류와 협력을 목표로 2020년 KBS가 론칭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한국에서는 격년으로, 아세안에서는 매년 개최되는 라운드 페스티벌을 통해 아티스트의 소통을 돕고, 매해 ‘라운드 뮤직 포럼’을 병행하며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동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세계가 단절됐던 2020년 온라인 언택트 공연을 시작으로 자카르타, 비엔티안,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이제 막 마닐라에 상륙했다!
다양성을 찬양하라, 라운드 페스티벌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적당한 긴장감이 기분 좋은 연료가 됐을까. 아세안 10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은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내며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는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 뒤에 간이 산소호흡기가 동원될 정도로 치열했던 이들의 투혼은 축제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캄보디아의 올라운드 뮤지션 지데빗(G-Devith)의 무대에 그의 파트너이자 핫 아이콘인 텝 보프렉(Tep Boprek)이 깜짝 등장하자 객석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자비까지 들여 수십 명의 댄서를 동반한 그들이 준비해 온 것은 단순히 힙한 무대가 아니라 크메르 문화의 정수를 각인시키는 발칙한 퍼포먼스였다. 캄보디아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는 이 파워 커플은 현대적 사운드와 전통 퍼포먼스가 결합된 압도적인 무대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태국 대중음악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는 록밴드 틸리 버즈 (Tilly Birds)의 감각적인 무대와 말레이시아 음악 신의 매혹적지배자 미미플라이(MIMIFLY)의 폭발적인 무대는 축제의 백미였다.
한편 K-콘텐츠의 영향으로 아세안 전역에 이미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아티스트들의 무대에도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페스티벌 호스트를 맡은 10CM는 관객들과 교감하는 매력적인 진행으로 이틀간의 여정을 이끌었다. 멜로망스가 필리핀의 국민 고백송 ‘Ikaw’를 완벽한 타갈로그어로 깜짝 커버하자, 수천 명의 관객이 웅장한 떼창으로 화답했다. 티켓 오픈 단이틀 만에 10만여 명의 접속자를 몰고 오며 서버를 마비시켰던 그 뜨거운 갈증이 마침내 현장에서 거대한 환대로 폭발한 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실험, 라운드라는 연대
이틀간 펼쳐졌던 축제의 피날레는 필리핀의 9인조 국민 밴드 벤앤벤(Ben&Ben)이 장식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퍼커션 등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유기적인 사운드는 아라네타 콜로세움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필리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한 스태프는 첫 곡 ‘Saranggola’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모르겠어요, 왜 울어버렸는지. 햇살 가득한 해변, 학교와 친구들이 떠올라서…. 저에게 벤앤벤은 어린 날의 나, 그 자체예요.” 청량한 기타 리프, 잊을 수 없는 후렴구 하나만으로 시공간을 되돌려 가장 찬란했던, 내내 그리웠던 순간을 소환하는 원초적인 예술, 음악!
맨 처음, 라운드가 믿었던 것도 그런 음악의 힘이었다. 복잡다단했던 역사와 매일 업데이트되는 현안으로 얽혀 있는 아세안 국가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동등한 소통을 이끄는 매개체로 음악을 택한 건 영민한 선택이었다. 자본주의의 최정점에 위치하는 페스티벌의 각축장에서 라운드는 정반대의 실험을 이어가는 중이다. 많은 관객이 함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연장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슈퍼스타가 총출동하는 공연을 매해 펼칠 것. 그것도 반드시 무료로! BTS의 신화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금 세계 음악 시장의 키워드는 ‘탈중심화(Decentralization)’다. 뉴욕이나 런던이 아니어도, 영어가 아니라도 지구 반대편 리스너들을 매혹할 수 있는 시대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싱가포르의 스트리밍 퀸 레지나 송(Regina Song), 타협하지 않는 정신으로 아세안 감수성의 가능성을 증명해낸 인도네시아 인디록의 아이콘 파뭉카스(Pamungkas)가 다름 아닌 마닐라에서 함께 노래하는 라운드야말로 그 흐름의 가장 생생한 현장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 음악 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다채로운 매력을 담아내는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며 라운드는 그렇게 관이 주도하는(KBS WORLD 주최, 한-아세안 협력기금(AKCF) 지원, 외교부와 아세안 사무국 후원) 이벤트의 지루함을 벗어던지는 데 완벽히 성공했다.
라운드가 써 내려가는 ‘연대의 서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한 힘을 얻을 것이다. 오로지 교류와 협력의 힘으로 지평을 넓혀가 는 이 대안적 페스티벌이 지금 꼭 필요한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라운드 페스티벌은 오는 가을, 한국에서 열린다. 취향의 확장을 꿈꾸는 모험적인 관객이라면 부디 놓치지 마시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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