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도시 대전 사용설명서
‘빵’으로 시작해 ‘빵’으로 끝난다. 지역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
BY 에디터 김화연 | 2026.06.04
치열한 예약 경쟁에서 승리한 이만이 택시에 탑승할 수 있다. 엄선한 빵 맛집을 동선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누비고, 이동 중에도 빵을 즐길 수 있도록 촘촘하게 구성했다. 빵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시에 존재하는 ‘빵택시’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간단했다. ‘대전에 빵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이걸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 없을까?’ 여행업계에서 오랜 기간 종사한 안성우 씨는 이를 활용한 ‘빵택시’를 고안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그해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이가 체험해보고 싶어 하는 ‘빵지순례’의 치트키가 됐다.
대전에는 이렇게 순례를 돌 정도로 빵 맛집이 많은 걸까? 그 뿌리를 찾으려면 8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빵의 도시 외에 대전을 부르는 또 다른 수식어는 바로 ‘철도의 요지’다. 호남선과 경부선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물자가 모였고, 특히 이곳에서 전국으로 분배되던 밀가루는 대전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밀가루가 시민들에게 보급되며 이를 활용한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대전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대전세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전국의 칼국수 가게는 1만 9446개, 빵 가게는 2만 8090개 정도다. 이를 인구 1만 명당 가게 수로 환산하면 각각 3.8개, 5.6개다. 같은 시기 대전의 칼국수 가게는 727개, 빵 가게는 849개다. 인구 1만 명당 칼국수 가게는 5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빵 가게는 5.9개로 서울과 대구 다음이다. ‘대전은 얼마나 밀가루에 진심일까?’라는 주제로 연구가 이루어질 정도로 이곳은 밀가루를 빼고 말할 수 없는 도시다.
올해 대전은 26년 만에 ‘대전의 맛 3선’을 개편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전 빵, 칼국수, 두부두루치기’. 수많은 음식 중 지역을 대표하는 맛으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빵의 도시를 완성하는 건 역시 ‘성심당’이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성심당은 오직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 ‘대전 이외 지역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2025년에는 매출2000억원을 돌파하며 단일 빵집 브랜드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성심당에서 경력을 쌓은 후예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녹인 가게를 대전 곳곳에 선보이고 있다. 또 ‘갓성비’라 불리는 성심당과 경쟁하다 보니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빵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도 많다. ‘빵 하면 대전’이라는 공식을 앞세워 대전시는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빵 축제를 열어 ‘대전에 가면 빵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식이다. 그리고 최근 ‘식사빵’과 ‘디저트’를 가리지 않는 이 빵순이 알고리즘에 뜬 새로운 소식이 있으니 ‘빵버스’로의 변화를 꾀한 빵택시 영상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곧바로 대전행을 결정했다.
아쉽게도 이미 ‘빵버스’ 티켓은 매진. 요즘 가장 ‘핫’한 체험답게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는 법.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에 검색에 돌입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빵시투어’ 프로그램이다. 빵시투어는 대전의 빵집 거리를 중심으로 시내를 순환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대전트래블라운지에서부터 네 곳의 빵 거리를 돌고 한화생명볼파크를 들른 후 성심당 본점에서 하차하는 코스다. 버스는 오전 9시 30분 첫 운행을 시작해 각 정거장에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운행 시간표에 맞춰 정거장에 가면 무제한으로 승차가 가능하다. 가격은 단돈 8000원. 4시간에 4만원(5월은 3만원으로 할인 운영)으로 이용가능한 ‘빵티칸 순례’ 빵투어 버스보다 경제적이다. 또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코스를 구성할 수도 있다. 물론 지역민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엄선된 빵 맛집 거리로 알아서 데려가주는 방식이라 코스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빵집과 빵집을 바로 이어주는 방식은 아니다 보니 시간 계산은 필수다. 정거장을 기준으로 도보 7분 내외 거리에 위치한 빵집을 직접 찾아가야 하므로 빵을 구매하자마자 바로 ‘빵시 투어’ 버스에 탑승하는 건 쉽지 않다. 대신 보통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도착하니 근처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길 여유는 충분하다.
에디터가 추천하는 코스는 대전시청남문 시티투어 탑승장 근처 빵지순례지인 ‘콜드버터베이크샵 시청점’에 들러 다양한 소금빵을 취향껏 구매한 뒤, 시청 잔디광장에 앉아 여유롭게 즐기는 것. 녹진한 카다이프가 가득 들어 있는 두바이 소금빵은 두바이 디저트 마니아라면 지나칠 수 없고, 알싸한 쪽파와 베이컨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쪽파 크림치즈 소금빵은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하다. 꿈돌이가 그려진 버스가 눈앞에 다가오면 다음 빵지순례 코스로 떠날 시간이다. 야구 직관과 빵 투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에도 꽤 합리적인 선택지다. 경기가 종료된 뒤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는 점은 야구 팬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때 보장된 ‘내 자리’가 있는 버스가 다가온다면? 구세주다!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쾌적한 환경에서 성심당 본점까지 들를 수 있다. 정거장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성심당 시루케익 전문점을 시작으로 케익부띠끄, 샌드위치 정거장, 본점 순으로 이동하면 성심당의 시그너처 메뉴를 충분히 경험하게 된다. 정신없이 트레이에 빵을 담고 계산하다 보니 어느새 총 결제 금액은 1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렇지만 괜찮다. 잔고는 줄어도 빵순이의 먹창고는 두둑하게 채워졌으니까. 넓고도 깊은 빵 인프라를 누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신의 속도와 취향, 그리고 예산에 맞게 경험한다면 만족스러운 빵지순례가 완성될 것이다.
빵지순례 PLACE
● 오렌지블로썸 @bakery.orangeblossom
베이커리 저온 숙성 방식으로 반죽한 빵을 선보인다. 빠른 생산보다 천천히, 제대로 만드는 ‘슬로 푸드’를 지향하며 건강한 달콤함을 전하고자 한다. 빵이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원하는 메뉴를 획득하려면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표 메뉴는 ‘수플레 퍼프’. 숙성 반죽을 꿀과 생크림 파우더로 코팅해 구워낸 뒤 수플레 크림을 채워 달콤하게 마무리했다.
주소 대전시 대덕구 계족산로81번길 70 1층
● 하루팡 @harupann
식사빵이 취향이라면 하루팡에 주목해보자. ‘야끼소바빵’ ‘페퍼로니피자빵’ ‘새우카츠버거’ 등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메뉴가 가득하다. 달달한 종류의 빵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팡의 ‘메론빵’은 ‘야끼소바빵’과 함께 대표 메뉴로 꼽힌다. 어떤 취향이라도 만족스러운 빵지순례가 가능하다.
주소 대전시 유성구 문화원로 77 1층
● 하레하레 @harehare_official
대전에 총 5개 지점이 있으며, 대전시 공식 지정 제과제빵명장 1호 이창민 셰프가 이끄는 곳이다.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는 케이크처럼 촉촉한 식감에 치즈의 고소함까지 더한 ‘쌀하레치즈’. 과하지 않은 치즈 풍미로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주소 (둔산점) 대전시 서구 둔산로 155 1층
● 라블랑제 @la___boulange
성심당 출신 주인장 부부가 운영하는 라블랑제. 주요 메뉴인 치아바타와 바게트에 천연 발효종을 넣어 식감이 부드럽고 풍미가 뛰어나다. ‘꿀밤바게트’ ‘소불고기치아바타’ 등이 인기가 많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이니 방문 전 참고할 것.
주소 대전시 서구 원도안로224번안길 3 1층
사진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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